동화책을 읽다보면 새삼 느끼게 된다. 세상의 진리가 참 쉽고도 단순하다는 것을. 인도에서 전해오는 옛 이야기가 있다. 젊어서 힘들게 농사를 지어 재산을 일군 한 농부가 나온다. 그에게는 아들 사형제가 있다. 행여 자신이 죽고난 뒤 자식들이 재산 때문에 갈라설까봐 "다툼이 생기면 이웃 마을 삼촌에게 가 보라"는 유언을 남긴다. 첫째와 둘째는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고, 셋째와 막내는 공부를 했다. 우애롭던 형제는 결혼을 한 뒤, 아내들 때문에 내분이 생기기 시작한다. 누구는 힘들게 농사짓고, 누구는 편안히 공부만 한다는 이유. 갈라서기로 결심한 사형제는 마지막으로 유언에 따라 이웃 마을 삼촌을 찾아가고, 삼촌은 사형제에게 서로 다른 곳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시킨다. 첫째는 한 노인의 밭일을 도와주고, 둘째는 가뭄에 고생하는 한 마을에 물길을 내주고 사례를 받는다. 셋째와 넷째는 지혜를 발휘해서 큰 돈을 받는다.
특히 셋째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셋째는 어느 마을에서 시름에 잠긴 큰 부자를 만난다. 그 부자는 물려받은 재산을 아우 셋과 똑같이 나누었다. 마지막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남았는데, 자를 수도 없어서 고양이 다리 하나씩을 형제들이 나눠갖기로 했다. 어쩌다가 고양이가 다리를 다쳤는데, 하필이면 그 다리가 이 맏형의 것이었다. 문제는 다친 다리에 붕대를 감은 고양이가 난로 곁에서 놀다가 붕대에 불이 옮겨 붙었고, 놀란 고양이가 이리저리 날 뛰다가 큰 불이 나서 재산을 몽땅 태워버렸다. 아우들은 형 몫의 고양이 다리에 묶은 붕대 때문에 불이 났으니 자기 몫의 재산을 물어내라고 난리였고, 맏형은 곤경에 처하고 말았다. 이야기를 듣고난 셋째는 사건의 당사자인 형제들을 불러놓고 명판결을 내린다. "비록 불이 붙은 것은 한쪽 다리이지만 고양이가 나머지 세 다리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뛰어다니며 불을 옮길 수 있었겠느냐"는 것. 아무튼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돈을 벌어온 사형제는 제각각의 할 일과 몫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려받은 땅은 첫째와 둘째에게 모두 주고, 셋째와 넷째는 지혜를 살려 다른 일을 맡게 된다는 내용이다. 싸움을 부추기던 아내들도 형제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결론이다.
살다보면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에 나만 정의롭고 옳은 것 같다. 미술계가 시끄럽다. 내년 개관 예정인 대구시립미술관 초대관장 선임을 두고, 내년 1월로 예정된 한국미술협회 제22대 이사장 선거를 두고 미술계 안팎에서 말들이 많다. 지역 미술계에 대해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구만큼 작가 개개인의 역량이나 시민들의 관심과 식견이 높은 도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전부 저 잘난 맛에 살다보니 힘을 한데 모을 줄 모른다. 대구로서는 큰 불행이다." 어디 미술계 뿐이랴. 대구는 능력에 비해 제 몫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이 참 많은 도시다. 앞서 '우애로운 사형제'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형제들은 각자의 역량을 간파했다. 서로 장기를 발휘해 남을 도왔다. 분쟁 중에도 죽은 아버지의 유언을 고분고분 따를 줄 아는 여유로운 미덕도 지녔다. 아버지는 다툼을 예견하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했다. 우리 미술계에도 나름의 빼어난 역량을 지닌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사형제와 같은 여유로운 미덕이 부족하고, 사태를 예견하고 훌륭한 조언을 해 줄 어른이 부족하다. 사형제를 부추겨 분란을 일으켰던 아내들. 지금 우리 미술계에는 그런 사람들만 가득한 느낌이다. 지역 미술계는 어느 분야보다 경쟁력이 뛰어나다. 그만큼 거는 기대도 클 수밖에 없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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