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먹으면 여자들만큼 말이 많아지는 남자들. 이런 남자들의 수다에서 빠지지 않는 화젯거리가 바로 축구다. 축구 이야기가 시작되면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른다. 그래서 군대 이야기와 더불어 축구 이야기는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여성축구 마니아들이 늘어나면서 축구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라는 공식이 깨어지고 있다.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여자들이 손사래를 치던 일은 이제 옛말이 되고 있다.
현재 대구에는 달서구를 비롯해 동구, 수성구, 서구에 여성축구단이 조직돼 있다. 조만간 북구여성축구단도 창단될 예정이다. 여성 축구붐은 2002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불기 시작했다. 월드컵 개최와 4강 진출 신화를 이룩한 태극전사들의 활약 덕분에 전국에 축구 열풍이 불었고 여자들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달서구청여성축구단은 축구를 전혀 접해 보지 못했던 아마추어 여성 30명이 모여 2002년 결성한 '달서인토피아'가 전신이다. 지난 2006년 달서구청 소속으로 바뀌면서 팀명을 달서구청여성축구단으로 바꿨다.
현재 단원은 20여명. 축구를 해본 경험이 없는 20~40대 주부들로 운동 삼아 축구를 시작했다가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모두 축구 마니아가 된 사람들이다. 달서구청여성축구단은 지난 8월 대구FC컵 대구사랑축구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9월에는 울주간절곶 전국여성축구대회에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 지난 2002'2006년 대구시축구연합회장기대회, 2002'2003년 대구시여성축구대회, 2003'2006'2007년 대구시장기생활체육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강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강정화(36)씨가 있다. 창단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달서구청여성축구단 전력의 핵심이다. 미드필더로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2년째 주장을 맡아 팀도 이끌어 오고 있다.
강씨는 핸드볼 선수 출신이다. 대구시청 소속으로 활약하다 은퇴한 뒤 전업주부로 지내다 우연찮게 축구부에 합류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한 강씨였지만 축구는 핸드볼과 또 다른 종목이었다. 손과 달리 발은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축구를 배울 초창기 남편을 졸라 야간에 특별훈련까지 받았다. "처음 축구를 할 때는 두려웠습니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데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걱정이 많았습니다. 1년쯤 하고 나니까 임신으로 불었던 살도 빠지고 자심감도 생겼습니다."
강씨를 비롯해 달서구여성축구단원들의 연습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5~11월에는 호림강나루축구장, 겨울철에는 달서구청소년수련관 내 풋살경기장에서 매주 세차례(월'수'금요일) 연습을 한다. 연습과 별도로 매주 한차례 따로 모여 경기도 한다. 시합을 앞둔 2주 전부터는 매일 연습을 한다. 아마추어 여성축구단으로서는 상당히 많은 훈련량이다.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든 강행군이다.
강씨는 "주부들이어서 연습 마치고 집에 가면 집안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피곤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축구장에만 가면 활기가 생겨납니다. 여자축구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습니다. 헛발질 해도 즐거운 것이 여성축구입니다." 강씨는 자신뿐 아니라 달서구여성축구단 단원 모두 축구에 미쳐 있다고 했다. 미치지 않고는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없다는 것.
특히 강씨는 길을 가다 체격이 좋은 여자를 보면 축구단 입단을 권유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주부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마땅히 해소할 길이 없는데 공을 차면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잔디구장에서 땀 흘리며 운동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경기에 이길 경우 승리의 쾌감을 맛볼 수 있고 졌을 때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습니다." 그녀는 여러번 축구를 그만둘 생각을 했지만 축구의 매력 때문에 아직까지 공을 차고 있다고 했다.
아마추어 여성축구 경기대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열리고 있다. 3월 시즌이 시작돼 11월 종료될 때까지 대구 또는 전국 대회가 매달 한두차례 이상 열린다. 달서구청여성축구단은 1년에 평균 4, 5개 대회에 출전한다. 전국대회에 출전하면 1박 2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주부들로서는 대회 출전 자체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강씨는 "달서구청여성축구단이 전국대회에 출전하면 집안일은 남편들이 해야 합니다. 남편들의 외조가 없으면 축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고마운 존재가 남편들입니다. 제 경우에는 축구를 한 뒤 가정이 더욱 밝아진 것 같습니다. 남편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축구가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씨는 또 "축구는 개인운동이 아닙니다. 수십년 동안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마음을 맞춰야 하는 운동입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축구는 축구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축구를 통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정을 나누는 법을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체력이 되는 한 축구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전국대회 4강이 최고 성적인데 우승도 꼭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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