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도시대 춘화는 은밀한 부분만 안가렸네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이연식 지음/아트북스 펴냄

▲그림자를 이용한 우키요에. 관객들은 이 그림을 통해 밝게 드러난 세계와 숨은 세계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1794 혹은 1795년경.
▲그림자를 이용한 우키요에. 관객들은 이 그림을 통해 밝게 드러난 세계와 숨은 세계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1794 혹은 1795년경.

우키요에(浮世繪)는 일본의 에도시대(1603-1867) 풍속화로 '에도 그림'을 말한다. 에도 시대란 임진왜란 직후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금의 도쿄(당시엔 에도)에 수도를 정하고 세운 막부시대를 말한다.

책에는 18세기와 19세기 일본에서 가장 화려했던 도시 에도의 모습을 담은 그림 120점이 다양한 해설과 함께 실려 있다. 부자들의 일상과 무사들의 생활, 무희와 유곽 여성들, 풍속, 풍물, 기괴한 이야기, 심지어 춘화까지 담고 있어 그림을 통해 당대의 가치관과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우키요에 속 미인들은 머리 모양과 복색, 표정이 비슷하다. 이는 당대의 여성들이 그렇게 생겼다기 보다, 당대 미인의 전형이 그러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우키요에 속의 춘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춘화와 다소 다르다. 남녀의 성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나머지 신체 부위는 옷으로 가리고 있다. 일반적인 드러냄과 가림의 상식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춘화와 비슷한 면도 있다. (신윤복의 춘화를 비롯해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조선의 여러 화가들은 성기는 드러내는 대신 다른 신체 부위는 가리는 그림을 종종 그렸다.)

또 우키요에 춘화에는 모기장이 자주 등장하는 데 모기장 안의 정사는 보일 듯 말 듯하여 더욱 야릇하다. 이는 감추기 위함인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모기장 안으로 집중시키기 위한 기교로 보이기도 한다.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사람들에게 우키요에의 풍경화는 바깥 세상에 대한 환상을 채워주는 동시에 실용적인 여행 안내서의 기능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서운 그림을 보면, 한국의 도깨비나 혹부리 영감이 일본에서 건너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팬티에 정수리에 뿔이 난 건장한 사내 도깨비는 일본의 '오니'와 무척 닮았다.

쓰키오카 요시토시는 참혹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 '오니온나'(鬼女)에 얽힌 이야기는 섬뜩하다.

'교토의 어느 귀족 가문의 늙은 여종 이와테가 벙어리가 된 주인집 딸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의 생간을 꺼낸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임신한 여성의 생간이 벙어리 치료에 좋다는 낭설을 믿고 길가에 매복해 있다가 임신한 여인이 남편과 함께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여인은 마침 산기를 느꼈고, 이와테는 여인의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며 마을로 내려보낸 다음 여자를 거꾸로 매달아 배를 갈랐다. 임신한 여자는 죽기 전에 어릴 때 이별한 생모를 찾아다니던 중이라는 말을 남긴다. 이와테는 여자의 짐 보따리에서 자신이 오래전 어린 딸과 이별하면서 준 부적을 발견한다. 자기 딸인 줄도 모르고 죽였던 것이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이와테는 정신이 나가버렸고 이후 여행자를 잡아먹는 '오니온나'가 됐다.'

임신한 여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칼을 가는 늙은 이와테의 모습은 냉정하고 살벌하기 그지없다.

한편 당시 유럽으로 수출했던 일본 도자기를 포장할 때 썼던 우키요에는 유럽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우키요에를 통해 유럽의 화가들은 화면의 중심이 꼭 인물이어야 한다는 관념,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은 우키요에를 통해 에도의 환상, 일본의 욕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에 유행했던 갖가지 이야기와 짜릿하고 기괴한 느낌을 전해준다. 우키요에 판화의 대표 히시카와 모로노부, 드뷔시에게 영감을 준 가쓰시카 호쿠사이, 배우의 내면까지 담아낸 도슈샤이 샤라쿠, 가장 농염한 미인화를 그려낸 기타가와 우타마로 등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232쪽, 1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