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치열한 전투는 없었다. 2차세계대전 중 스탈린그라드에서 벌어진 6개월간의 공방전은 독일, 소련군을 합해 200만명의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대재앙이었다. 1942년 말 독일 제6군은 스탈린그라드 점령에 실패하고 오히려 역포위를 당했다.
제6군 사령관은 교사의 아들이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1890~1957)대장이었다. 귀족(융커) 출신이 장악한 독일 육군에서 그만큼 승진한 것은 성실하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제6군은 탈출 기회가 있었지만 히틀러의 사수 명령에 따라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독일 영화 '스탈린그라드'(1993년)에 참혹한 상황이 잘 묘사돼 있다.
히틀러는 그를 원수로 진급시키고 '항복하지 말고 자살하라'고 강요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오스트리아 상병(히틀러의 군대 계급)을 위해 죽을 수는 없지"라며 1943년 1월 31일 항복했다. 그러나 그의 부하 9만1천명 중 시베리아로 끌려가다 절반이 죽고 훗날 귀국한 것은 6천명에 불과했다.
그는 나치에 대한 선무공작을 하다 종전 후 동독에서 경찰 간부를 지냈고 1957년 오늘, 죽었다.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자책과 분노 속에 비참한 말년을 보낸 군인이었다.
박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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