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사명대사 일본 탐정기(박덕규 지음/랜덤 하우스 펴냄)

사명대사, 한'일 평화외교 시대 열었다

▲충북 제천시 덕산면 신륵사 극락전(충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32호) 외벽에서 발견된
▲충북 제천시 덕산면 신륵사 극락전(충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32호) 외벽에서 발견된 '사명대사일본행지도(泗溟大師日本行之圖)'. 이 벽화에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강화정사로 일본을 상륙했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사명대사 유정은 1544년(중종 39년) 경남 밀양군 무안면 괴나루(고라리)에서 태어났다. 10대 중반이던 1560년 김천 직지사에서 신묵화상의 인도로 출가했다. 법명은 유정(惟政)이고 속명은 임응규였다.

사명대사의 영정은 모두 수염을 기른 모습인데, 조선의 승려가 수염 기르는 일이 드물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이하다. 지은이는 이를 "사명대사가 스스로 밝혔듯이 유정은 승려이되 유가(儒家)의 정신을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스스로 신체를 드러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사명대사 유정은 의병 활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하나의 가치, 하나의 관점에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유정은 숨은 사찰을 찾아다니며 수행했고, 많은 선비와 교류하는 학승이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승장으로 활약했다. 왕명을 받은 신하로 한반도 골짜기를 구석구석 누볐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 사절로 일본으로 가서 왜군이 포로로 끌고 간 3천여명을 귀국시켰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 왕릉을 훼손한 일본 병사를 잡아 보내게 했다.

소설 '사명대사 일본 탐정기'는 임진왜란 중에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전했고 전후 외교사절로 일본으로 건너가 침략자의 잘못을 물은 대사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이 재침략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임진왜란 당시 선봉에 섰던 가토 기요마사와 같은 일본 장수는 조선이 보복할 것을 우려해 높은 성을 쌓고 깊은 해자를 팠다. (일본 3대 성(城)중에 하나로 꼽히는 구마모토 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뒤 증축한 성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은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정권이 도요토미 가문에서 도쿠가와 가문으로 넘어갔고 정치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적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 대마도를 통해 교린을 청하는데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몰랐다.

이때 사명대사는 61세의 노구를 이끌고 일본을 방문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논의하고 화평조약을 맺었다. 일본으로 끌려간 3천명을 송환하고 이후 외교를 정상화 시켰으며 조선통신사의 기반을 닦았던 것이다.

지은이는 이 소설을 통해 "임진왜란은 7년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전쟁을 기화로 일본의 의식 속에 정한론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300년 뒤에 일본은 다시 침략해왔고 패전한 뒤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일본인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정한론을 뿌리뽑지 못한 조선의 잘못을 '사명대사'를 통해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일본을 방문한 사명대사는 교토에서 석달 동안 머물며 도쿠가와 히데타다(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로, 당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쇼군에 올라 있었다)로부터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며 조선과 새로이 교류할 것을 바란다'는 친서를 받아냈다. 조선인 포로 송환과 중종 임금 부부의 능을 훼손한 범인을 잡아보내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귀국길에 사명대사는 일본인 고관들에게 다시 일침을 놓는다. 이 일침은 일본을 향한 일침이자, 지은이가 사명대사의 입을 통해 현대 한국인에게 가하는 일침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본 혼슈에 다녀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도쿠가와 쇼군을 비롯해서 거기서 만난 승려, 유학자, 다이묘, 사무라이 모두가 일본이 침략한 나라 우리 조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동행한 일본 대신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대사!" 하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대사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쇼군을 비롯해서 어떤 다이묘도 조선 침략을 운운하는 이는 없는 듯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도쿠가와 바쿠후(막부)를 비롯해서 모든 일본 사람들이 지난날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건 안 했건, 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 침략에 대해 죄스러워 하지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있어요. 지금에 이르러 조선과 교통이 필요한 것일 뿐 지난 일은 조금도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명대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우쭐한 기분에 젖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명대사는 바로 그 순간 '조선과 일본의 진정한 미래 관계' 를 걱정했던 것이다. 대사의 그 같은 경계를 조선인도 일본인도 귀담아 듣지 않았고, 300년이 지나 일본은 다시 침략했고, 조선은 쑥대밭이 됐다. 그리고 일본은 다시 제 나라로 돌아갔지만 변한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명대사가 귀국길에 쏟아냈던 얼음처럼 차가운 경고는 아직 유효하고, 이것이 지은이가 이 소설을 쓴 이유다. 407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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