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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사살 3천여명, 포 53문 노획, 영천 전투 후 북괴군 패주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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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영천을 점령한지 사흘 만인 9월 8일 아군 21연대가 고립무원에서 사흘 동안 버티며 적 3개 연대의 발을 묶고 있을 때 다부동 전선의 미 제1기병사단에서 M4-A3 셔먼 탱크 7대를 지원하고 아군 7사단 8연대가 다시 증원돼 19연대와 함께 반격을 가해 왔다. 이 무렵 11연대가 영천 남쪽 금호강변에서 영천읍내로 진격해오고 포항 공방전에 배속되었던 10연대가 복귀하면서 3면 협공이 이루어져 마침내 영천 회전의 승기를 잡았다.

19연대장 김익렬 대령은 작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호위병 1개 소대를 이끌고 영천 서북쪽의 탑동 삼거리를 지나던 중 뜻밖에도 적의 트럭과 마차 등 150여대가 탄약과 식량 등 보급품을 잔뜩 싣고 영천읍내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적은 영천을 방어하고 있던 아군 8사단이 완전히 퇴각한 것으로 착각하고 아예 무장 호송병도 배치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서 1개 소대 병력을 지휘해 모두 파괴해 버렸다.

김 대령은 이어 영천역 동쪽 과수원에 적 15사단 지휘소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개 대대 병력을 차출, 포위 작전으로 소탕전을 벌이던 중 누군가 백마를 타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을 발견했으나 그만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백마를 타고 달아난 자가 바로 사단장 조광철이었다. 적 15사단은 역시 조조군사에 불과했다. 심지어 탱크포를 쏴 대던 T-34 탱크 5대도 연료가 떨어져 기동을 못하자 아군 특공대가 달려가 그대로 노획하고 전차병들을 생포했다.

9월 6일부터 14일까지 9일간에 걸친 영천 회전에서 적 15사단은 완전히 괴멸되고 8사단도 조직이 해체될 정도로 큰 타격을 입고 영천에서 퇴각했다. 그동안의 전과는 적 사살 3천200여명, 생포 309명, 탱크 5대를 비롯한 장갑차 2대, 각종 중포 53문을 노획이었다.

이로써 2개월간에 걸친 낙동강 전선의 공방전은 승패가 판가름 나고 북한 공산군은 패주일로를 치닫게 된다.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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