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정치인 대구시장, 공무원 대구시장

김범일 대구광역시장님.

시정을 이끄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조금은 기세가 꺾인 듯해 시정 현장을 챙기러 다니기가 다소나마 수월해졌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아마도 올여름은 시장님에게 기억에 남는 시절일 것 같습니다. 수해에 관한 한 비교적 안전지대라고 치부되던 대구에서 노곡동 물난리가 두 번이나 발생해 매우 곤혹스러웠을 테고, 성서IC~서대구IC 구간 교통 정체 문제로 인해 빗발치는 여론 뭇매도 많이 아팠을 겁니다. 시정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인 기업 유치에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유통 공룡들이 속속 입성해 골목상권을 포식하는 동안 도대체 시는 무엇을 했느냐는 보도에 크게 역정을 내셨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했습니다. 인구 250만의 메트로시티의 행정 책임자로서 마음이 분주하지 않은 날이 없는 것이 시장의 운명이겠지요.

시장님에 관한 첫 기억은 제가 대구시를 출입하던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하철 방화 참사로 시정이 마비되다시피하던 그때 시장님은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88서울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두 주역 공무원 중 한 명"이라는 하마평이 나돌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정무부시장 김범일은 탁월한 영어 실력과 비상한 머리, 풍부한 행정 경험, 좌중을 휘어잡는 유머와 언변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 후 7년여가 흘렀습니다. 정무부시장 김범일은 대구시장으로 업그레이드했고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지하철 방화 참사 후유증을 수습하면서 대구는 최악의 상황을 지난 듯하고 이제 희망도 이야기할 상황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며 대구경제도 딱히 잘 풀리지 않는 듯합니다.

얼마 전 시 간부 인사를 단행하면서 시장님은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인력풀 부족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선에 들어선 시점에서 그런 발언은 푸념으로밖에 안 들리기에 그렇습니다. 지난 4년여 동안 인재를 제대로 키우지 않았다는 고백과 무엇이 다를까요. 오합지졸을 정예부대로 키워내는 것이 진정한 리더입니다. 성적 부진으로 쫓겨난 전 축구국가 대표 본 프레레 감독이 툭하면 선수 핑계를 댔다지요. "나는 전술적으로 완벽했으나 선수들의 정신상태가 해이했다"고. "대구 상황이 이런 것은 다 내 책임"이라는 시장님의 말이 듣고 싶어집니다. 대구 공무원들의 정신 재무장과 각오 다지기는 여기서 출발할 겁니다.

시장은 정치인입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는 데 법, 규정에 제약이 있고 기득권 저항이 있다 하더라도 소신껏 밀어붙이는 뚝심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시장님에게서는 정치인보다 공무원 색깔이 더 많이 보입니다. 이런저런 것들 너무 견주지 마셨으면 합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유통 공룡들의 대구 경제 잠식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최근 동아백화점이 이랜드로 넘어갔습니다. 롯데백화점에 이은 현대백화점의 대구 진출이 결정타였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의 대구 진출설도 숙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세계마저 대구에 입성한다면 다음 희생양이 누가 될지는 뻔합니다. 시민들은 "유통 대기업의 대구 입성을 온몸으로 막아보겠다" "밀양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는 시장님의 뚝심 있는 행보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지역 광역단체장들이 잠재적 대권 후보로 거명되는 것을 보면 부러울 따름입니다. 시장이 잠재적 대권 후보라면 정부여당이든, 재벌총수든 대구를 만만히 보지 못하겠지요. 기업 유치 때문에 시가 구애의 눈짓을 보내고 있는 삼성그룹 수뇌부만 하더라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거물 정치인 대구시장을 시민들은 염원하고 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라는 이탈리아 소설에서 돈 까밀로 신부는 신앙심 깊고 자기주장이 분명하며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몸으로 뛰고, 신자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주먹질까지 마다 않습니다. 그런 신부님을 마을 사람들은 몹시 사랑합니다. 때로는 몽상가로 비칠 만큼 돌파력 있는 '대구시장 김범일'을 상상해 봅니다. 임기를 마친 후에 시민들로부터 '시장님, 시장님, 우리 시장님'이라고 불리며 사랑받는 그날을 꿈꿔보며 이만 줄입니다.

김해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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