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저는 이제 없습니다. 모든 걸 잊고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오직 달릴 뿐입니다."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육상 선수가 있다. 소속팀에서 퇴출당하며 육상 선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대구에서 재기해 부활의 칼날을 갈고 있는 육상 장거리 선수 전은회(22·대구도시공사)다. 전은회는 배문고 시절 '제2의 황영조'로 불릴 정도로 유망주로 인정받았고, 건국대-삼성전자 육상단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한국 육상 장거리의 미래를 짊어질 선수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 관리에 소홀하면서 허물어졌다. 2007년 건국대 입학 후 학교에서 2년간 코스로 일본 유학 기회를 줬지만 마음대로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어 대학을 중퇴하고 2008년 7월 삼성전자 육상단에 입단했다. 그러나 팀 내 갈등으로 지난해 2월 이곳에서도 입단 7개월 만에 퇴출당했다. 13개월간의 공백기를 가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올 3월 창단한 대구도시공사 육상 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다시 육상화 끈을 동여맸다.
"짧은 생각,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쳤습니다. 일본에서의 훈련 방식도 안 맞고 돈도 벌고 싶었습니다. 건국대 감독님과 코치님께 정말 죄송하고, 늦었지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삼성전자 육상단에서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까지 포기하고 갔는데 우울증이 생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퇴출당한 전은회는 칼국수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보냈다. 하지만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육상 팀 창단을 준비하던 대구도시공사 김홍화 코치의 부름을 받았다. 서울을 떠나면서 "금메달을 따기 전에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 죽어도 운동장에서 죽겠다"는 말을 남기고 대구로 왔다.
전은회는 자신에게 향했던 비난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달리는 데만 집중했다. 경북체고에서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운동에 방해가 되는 생각과 행동은 하지 않았다. 콜라를 좋아하지만 한 번도 마시지 않았다.
이 덕분에 그는 훈련 2개월 만에 각종 대회에서 빛을 냈다. 올 5월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10,000m에서 우승한 데 이어 6월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후카가와 챌린지 10,000m에서 개인 최고 기록(29분 11초 41)을 경신하며 2위를 차지했다. 7월엔 홋카이도 기타미시 챌린지 5,000m에서 '일을 낼 뻔'했다. 5,000m 한국 기록에 0.9초가 모자라는 13분 50초 91을 작성, 한국 기록 경신을 아쉽게 놓쳤다. 또 지난달 태백에서 열린 전국 실업단대항육상경기대회 5,000m와 10,000m에서 모두 우승했다.
전은회의 1차 목표는 다음달 열리는 전국체전 5,000m, 10,000m에서 한국 기록을 수립한 뒤 곧이어 열리는 일본 기록 대회 5,000m, 10,000m에서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B기준 기록 내에 드는 것이다. 다음 목표는 '제2의 고향'으로 삼은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은회는 중거리에서 스피드를 최대한 끌어올린 후 올겨울 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이다.
대구도시공사 김홍화 코치는 "1990년대 초반 코오롱에서 황영조의 코치를 맡았는데, 그 당시 황영조의 5,000m 기록과 페이스보다 전은회가 더 좋다"며 "집중력과 의지가 대단하고 훈련을 그만 하라고 말릴 정도로 열심히 한다. 기량도 계속 좋아지고 있어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일을 낼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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