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이태성 교수

임상시험·기초의학까지 심혈…부인암 치료법 새 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이태성 교수는 의사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부인암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이태성 교수는 의사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부인암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이태성(58) 교수(의과대학장)는 자궁경부암, 난소암 등 부인암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이다. 동료와 후배, 제자들이 인정하는 뛰어난 외과의사이면서 내과적 치료인 화학적 항암요법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해 왔고, 치료방사선에도 관심이 많다. 기초의학 연구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생리통을 줄일 수 있는 생리대 개발 특허도 갖고 있다. "해가 갈수록 의사로서 한계를 느끼며 두려울 때가 많다"고 말하는 그는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의사가 믿고 맡기는 의사

"20년가량 동산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1979년 인턴을 시작으로 2000년 3월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거기서 근무했죠." 당시 그를 찾는 부인암 환자는 연간 200~250명선. 전국적으로 2, 3위에 이르는 실적이다. 자궁경부암 환자가 가장 많았고, 난소암 환자도 매년 30~40명씩 찾아왔다. 난소암의 경우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환자를 본 셈이었다. 꾸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한 암 환자의 특성상, 의사 한 명이 돌보는 환자도 늘게 마련이다. 이 교수의 경우 치료 후 관리하는 환자까지 포함하면 3천여 명을 헤아렸다.

10년 전만 해도 대구가톨릭대병원에는 부인암 환자가 많지 않았다. 연간 10여 명 안팎. 이 교수가 옮겨 오면서 그가 돌보던 환자들도 따라왔다. 환자 수는 20배 이상 늘었다. 부인암 치료에서 새로운 장을 연 것이다. 방사선 치료를 도입하면서 치료방사선과도 신설했다.

"왜 환자들이 교수님을 찾느냐?"는 물음에 그는 "글쎄요…"라며 한참 머뭇거렸다. 암 환자들은 대개 사전 정보 없이 병원을 찾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해당 질환의 권위자가 어디에 있는지 꼼꼼히 묻고 따진 뒤에 찾아온다. 처음 진단을 내린 의사들이 추천하는 경우도 많다. 이 교수 경우, 동료 의사들이 믿고 의뢰하는 환자가 유난히 많은 편이다.

"자궁경부암의 경우, 과거엔 암으로 진행된 환자가 3, 4명이라면 암 전 단계 환자가 1명에 불과했습니다. 요즘엔 정반대로 바뀌었죠. 그만큼 조기 발견이 많이 된다는 뜻입니다. 암의 0기에 해당하는 환자가 그만큼 많아졌습니다. 이런 경우 '원추절제술'을 통해 암 진행이 의심되는 부위만 잘라내면 됩니다. 이후 암으로 진행되는 비율이 평균 5~6% 수준인데, 제 환자는 2~3%입니다."

◆미국 연수서 임상시험에 눈떠

1987년 이 교수는 미국 뉴욕에 있는 슬로안 케터링(Sloan Kettering) 암센터에서 6개월간 임상 연구를 하게 된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MD 앤더슨 암센터와 함께 암 치료에 있어 양대 산맥을 이루는 곳. 특히 수술에 있어서는 한 수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임상시험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당시 국내에선 임상시험이 거의 없었죠. 그저 기존에 개발된 치료법에 머물렀을 뿐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임상시험은 무지한 수준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국내 임상시험은 비약적 발전을 한 셈이죠."

프로토콜(protocol:과학적 실험 및 환자 치료를 실행하기 위한 계획)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의사가 쓴 논문이 해외 학술지에 실리는 것은 꿈도 못 꾸던 때였다. 의료 통계가 부실해서 논문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990년대 중반 '임상시험센터'를 대구에 유치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당시 정부 측 고위 인사와 약전골목을 거닐며 이런 대화를 나눴죠. '우리 인삼을 미국에 수출하면 수백만달러를 벌겠지만, 미국 사람들은 인삼 추출 성분으로 약을 만들어 수억달러를 벌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 일을 하면 안 되겠느냐.' 만약 임상시험센터가 들어섰다면 대구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겠죠."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암센터(NCI)에서 일 년간 기초의학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당시 자궁경부암 발생의 주요 인자로 알려진 인유두종 바이러스와 자궁경부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이 교수는 단순히 치료하는 의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하고 도입하는 데 앞장서는 프런티어 의사로 거듭나게 된다.

◆호스피스의 필요성 절감

2006년에는 생리통과 생리증후군을 줄일 수 있는 다기능성 생리대에 대한 특허도 받았다. "학창 시절 부인학 전공서적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부분이 '자궁내막증'인데, 당시엔 그런 환자를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른 초경에다 늦은 결혼, 적은 출산 탓에 생리 횟수가 늘면서 자궁내막증 환자가 급증했습니다. 결국 생리통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죠."

그는 "현대 여성에 있어 노동력 상실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생리통"이라고 진단했다. 바이오세라믹을 이용해 자궁 내 혈관수축을 막으면 생리통과 생리증후군이 훨씬 줄어들 수 있음에 착안, 그는 이런 성분을 함유한 팬티, 브래지어 등을 개발했다.

"한 섬유회사와 공동으로 개발해서 이미 시판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이 의료용이 아니다 보니 의료적 효과가 있다는 광고를 못합니다. 생리대도 제품화하려고 했지만 법적 규제에 막혀 제품화하지 못했습니다. 극복할 문제가 아직 많은 셈이죠."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자 그는 "치료에 성공한 환자는 잊혀지지만 치료 못 한 환자는 늘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예전에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난소암에 걸려 그를 찾아왔었다. 수영 선수로 전국대회에 나갈 만큼 건강했던 학생. "가정 형편도 어려웠는데 암이 재발했습니다. 어떤 치료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퇴원한 지 4시간 만에 집에서 숨을 거뒀죠. 놀라운 것은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고통이 극심했을 텐데도 종교에 귀의하면서 놀라울 만큼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호스피스의 필요성을 절감했죠."

젊은 시절 그는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그는 무섭고 겁이 나며 한계를 절감한다고 토로했다. "부인암은 암성 고통이 특히 심합니다. 당장 생명과 직결된 부위가 아니다 보니 온몸에 암이 퍼질 때까지 환자를 괴롭힙니다. 새삼스레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보다 편안히 생을 마감하도록 호스피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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