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 우리는 사하라사막을 이야기할 때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 작열하는 태양, 뜨거운 열기와 더위 등을 소재로 떠올린다. 그리고 또한 많은 이들은 어린 왕자의 낭만에 취한 어릴 적 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사하라는 어른이 된 후 동심의 꿈을 이루고자하는 판타지 세상이기도 하다.
고요한 사하라의 밤,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에 누워 사하라의 밤하늘을 바라보면 왼쪽 지평선 끝에서 오른쪽 지평선 너머 끝까지 온통 별천지다. 황홀함과 아름다움이 중첩된 환상적인 별과 은하수의 세계는 모든 걱정을 잊고 안락한 평화의 기운을 만들어 준다. 마마호환보다 더 무서운, 매력적이며 오묘한 중독성이 있는 사하라. 일단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절대로 다시 안 가고는 못 견딘다. 단 한 번의 사하라가 인생의 목적을 다시 한번 사하라와의 조우를 꿈꾸는 걸로 바꾸게 할 수도 있다.
"정신 차려, 풀코스도 안 뛰고 무슨 놈의 사하라냐!" 처음 사하라 레이스에 도전하기 전 누군가 나에게 적나라한 표현의 말을 했다. 당시 나는 오지 레이스에 도전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까지 변종 취급받고 욕먹는 일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2002년부터 총 16번의 오지 레이스 도전에 성공한 지금, 이 세상은 나에게 '사막의 아들'이란 별명을 선물로 주었다. 참 재미난 세상이 아닌가.
대회 전날 이집트 카이로에 모인 참가자들은 장비검사를 마친 후 대회 출발지까지 7시간의 버스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끝없이 펼쳐진 누런 모래세계를 먼저 만나게 됐는데 경기 시작 전부터 모두 기겁을 하게 만든다. 먼 옛날 이집트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기준으로 서쪽 사하라 사막은 죽음의 땅, 동쪽 나일 강 지역은 인간의 땅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지인들에게 사하라 사막을 달리러왔다고 이야기하면 모두 놀라며 두 손을 들고 '인샬라'(신의 가호가 있기를…)를 한다.
사하라 대회의 경우 지금까지 모로코 대회 2번, 이집트 대회는 3번째 참가다. 이제는 지겨워 질만도 하지만 사하라는 이상하리만큼 질리지 않고 항상 매력적인 곳이다. 그곳에서는 하늘의 별과 달과 이야기하고, 오아시스와 아름다운 데이트도 가능하다.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서 또 다른 넓은 세상의 소식과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인생을 경험할 수도 있다.
사하라 사막 레이스는 하루 평균 40㎞ 이상, 총 250km 전후의 거리를 달리든지 걷든지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거리 환산은 지도상에 선을 긋고 직선거리로 계산을 하기에 코스에 따라 1.5~ 2배를 더 곱해야 실제 거리가 된다. 두발로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보니 무지막지하게 뛰고 걷기를 반복해야하는 단순 무식함의 극치를 볼 수 있는 대회이기도 하다.
대회는 새하얀 사막과 한편으론 화산재들이 바닥을 도배질한 흑사막을 지난다. 그리고 높은 모래언덕들을 넘어서 가는 듄데이(Dune Day)를 참고 견디면 가장 어려운 관문인 1박2일을 달리는 롱데이가 떡 하니 버티며 우리를 기다린다. 마치 이소룡 영화 '사망유희'에서 사망탑을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대회는 자급자족이지만 보통 10~12㎞사이의 체크포인트에선 물과 의료지원을 해준다. 그래서인지 지쳐서 쓰러질만하면 숨어서 나타나는 체크포인트 때문에 다시금 힘을 받는다.
사하라를 달리다 보면 여러 가지 색다른 경험들을 하게 된다. 나의 경우 오지 레이스에서 지속적으로 시각장애인 도우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에는 캐나다에서 긴급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제는 대회 경험이 많다 보니 외국에까지 신뢰를 얻은 모양이다. 어쨌든 내가 팀으로 참여해 함께 시각장애인을 안내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론, 그의 안내인 탐과 함께 팀을 만들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친구들의 마라톤 기록이 3시간으로 엄청나게 빠른 사람들이었다. 난 4시간이 넘는데….
대회 첫날, 장거리 레이스고 처음 참가하니 천천히 적응하며 달리라는 나의 충고와 부탁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이 친구들은 처음부터 미친 듯이 달린다.
함께 훈련을 안 했기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 친구들의 속도와 달리는 방식의 차이로 1, 2일은 반 정도만 도우미를 했다. 그런데 처음에 무리를 한 탐의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대신 적응을 완전히 끝마친 나의 컨디션은 상대적으로 좋아져서 3일째부터는 전 구간을 혼자서 도우미를 했다. 달리기의 완급을 조절하며 팀을 이끌어가면서 내심 탐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고 사막 레이스의 꽃인 롱데이를 그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래서 롱데이날 아침 탐에게 작전을 이야기를 했다.
"탐, 사막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바로 오늘이야. 더운 낮에는 내가 도우미를 할 테니 시원한 오후부터 마지막 골인까지 도우미를 하라고. 밤에는 내가 뒤에서 따라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서 총 9개 구간 중에 내가 6개를 마치고 탐이 2개를 끝냈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10㎞ 정도. 마지막 체크 포인트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고 탐에게 말했다.
"자, 이제부터 너의 시간이 왔다. 멋지게 마무리해." 그런데 탐은 머뭇거리더니 배낭을 챙겨서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먹튀'를 한 것이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운영하는 봉사단체의 이름을 걸고 자기가 데려온 시각장애인을 힘들다며 다른 나라 사람에게 떠넘기고 나 몰라라 도망을 가는 것이다. 골인 지점을 얼마 안남긴 모래언덕에서 탐이 기다리고 있다가 론의 팔을 잡고 올라가려 하자 론이 손을 뿌리치고 나의 팔을 잡고 올라갔다. 인종이 다르고 나라가 달라도 역시 사람은 누구나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나보다.
1박 2일의 길고도 길었던 롱데이를 마치면 '끝냈다!'라는 안도감과 함께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갑자기 우울해진다. 자연 속에서 지냈던 일주일 간의 짧은 자유와 낭만을 버리고 다시금 복잡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현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은 항상 또 다른 일상탈출을 꿈꾸며 사는지 모르겠다. '인샬라!'. 참고로 2010년 대회는 10월 3일부터 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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