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 배우들을 많이 만나왔지만 희한하게도 엄지원과는 인연이 없던 기자는
영화 '불량남녀'(11월 4일 개봉)의 개봉소식에 '옳거니'를 외쳤다.
드디어 그녀를 만날 기회가 찾아왔으니 말이다. 만남에 대한 설렘 때문일까.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커피 향기가 짙게 밴 한 카페에 도착했다.
늦을 때도 골치 아프거니와 이를 때도 난감한 것이 약속이란 것이지만 이날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시계의 분침이 조금씩 줄어드는 모양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으니 말 다한 것 아닐까.
드디어 그녀와의 첫 만남. 어떤 말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 계속 고민하던 내게 엄지원은 "아까부터 계속 기다리셨죠? 힘 드셨겠다"라고 먼저 말을 건넸다. '친절한 지원씨'였다. "아니에요. 힘들긴요. 인터뷰가 많아서 지원 씨가 더 고되겠는데요?"라고 기자가 답하자 그녀는 홍보사 직원의 눈치를 살짝 보는 척하며 "힘들죠. 그래도 이제 마지막이 보여서 좋아요"라고 샐쭉 미소지었다. 그렇게 엄지원과의 첫 대면은 시작됐다.
#코믹 연기라기보다 밝은 연기에 재미 느껴
- 연기 생활한 지 벌써 10년이나 됐어요. 배우로서 지난 행보를 돌이켜보면 어떤 것 같아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는 했어요.(웃음) 영화만 보고 살았죠.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아니 이제는 열심히 보다 잘하고 싶어요."
- 코미디를 선택했다는 것이 색다른 것 같아요. 코미디를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건가요?
"코믹 연기를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보다는 밝은 연기를 한다는 것에서 제 스스로 재미를 느꼈어요. 특히 사회적으로 무거운 이야기인 빚이나 대출 관련 이슈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요. 무엇보다도 제일 관심이 있었던 것은 임창정 씨와 연기한다는 것이었어요. '스카우트' 찍으면서 친해졌는데,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것을 보고 '다음에 꼭 한 번 더해서 관객들 웃겨보자'고 다짐했죠. 이번 작품은 그래서 의미가 있어요."
엄지원의 말대로 임창정과는 최근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시라노;연애조작단'을 연출한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작품성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관객 동원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엄지원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자신의 출연작 중 으뜸이 '스카우트'일 정도.
"'스카우트'는 정말 더 잘될 수 있는 영화였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이번 작품을 하게 한 것이거든요. 사실 남을 웃긴다는 게 쉽지 않아요.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불량남녀'는 진짜 안 보면 후회할 만큼 재미있다고 자신해요."
#실제와는 다른 캐릭터…의외로 비슷한 면도…
엄지원은 영화 '불량남녀'에서 인정사정없이 빚을 받아내는 깐깐하고 한 성깔 하는 채권담당 직원 무령 역을 맡았다. 자신의 맡은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뿐이지만 남들에게는 성격이 못된, 영화 제목처럼 '불량'스럽게 느껴져 웃음을 전한다. 극중 그녀가 돈을 받아내기 위해 30분 단위로 '빚 갚으라'고 독촉 전화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배꼽사냥 중 하나다.
"실제로 빌려준 돈에 대해 달라고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저와는 좀 다른 캐릭터이기는 한데, 의외로 비슷한 면도 있다고 하네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꼭 영화관 가서 저를 봐주세요."(웃음)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잘하는 건 역시 연기
인터뷰 내내 어깨가 가볍게 들썩일 정도의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약간 시끄럽다고 할 정도의 볼륨이었는데도 듣는 이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엄지원의 말이 재즈 음악 속 가사가 된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게 할 정도로 흥겨웠다.
- 재미삼아 '엄지원'이란 이름으로 3행시 한 번 지어볼까요? 본인에게 가장 '엄'한 부분이 있다면?
"자기관리를 가장 엄하게 해요. 쉴 때도 풀어지지 않으려고 항상 무엇인가를 준비하려 노력하죠. 쉬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아요. 뭔가를 하나 하더라도 연기에 도움되는 것을 하려고 해요. 사람들 만나도 나쁜 것에 물들지 않게 진짜 정말 좋은 사람 만나려 하고요. 제 스스로 생각하는 정의의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까요."
- 그래서 엄지원 씨가 만능 엔터테이너군요. 와인 관련 서적도 내고, MC도 보고, 노래도 잘하고 말이죠.
"제가 쉽게 싫증을 내는 스타일이라 여러 가지 해본 것일 뿐 큰 의미는 없어요. 그런데 다 해본 결과 잘하는 것은 연기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오랫동안 잘하고 싶고 계속해도 안 질리는 게 연기더라고요."
#친구 같은 사랑 하고 싶어요
- 자신을 '지'탱해주는 존재가 있다면?
"신앙이에요. 종교적인 부분이라 더 털어놓기는 뭣하지만 하나님은 제 삶의 중심이에요."
- 마지막 질문은 조금 재미있을 듯한데요. '원'없이 쓸 돈이 생기면 어떤 것을 해보고 싶어요?
"안 그래도 예전에 그런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웃음) 우선 예쁜 집을 하나 살 것이고요. 그리고 한 10억 정도 여윳돈 남겨 놓고, 나머지는 좋은 일도 좀 하고 싶어요. 사실 돈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라서 크게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네요."
엄지원도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솔로 탈출 소식을 고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녀도 사랑을 이룰 때라는 사실은 확실한 명제인데, 그 명제에 대한 정의를 아직 내리지 못한 것이다.
"친구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요. 편한 친구 같지만 좋은 연인으로 지내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또 제가 뭘 해도 예쁘게 봐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요. 저도 빨리 예쁜 사랑 만들어야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엄지원의 눈빛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역시 '사랑'은 단어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묘한 존재란 사실을 그녀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와 이별을 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아쉽지만 그녀가 꿈꾸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안성기 선배님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이름을 들었을 때 '그 배우 참 좋지?'라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젊음을 유지하려 너무 용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또 아름답게 늙어가는 배우 '엄지원'으로 여러분들 곁에 남고 싶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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