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너머'란 말이 있다. 나의 생애 전체를 사자성어로 압축한 것 같다. 어깨너머는 정상 채널을 통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교본이나 스승을 통하지 않고 뭔가를 배우긴 배웠는데 폼은 엉성하고 짜임새가 시원찮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영 신출내기는 아니지만 달통하지는 못한 반거충이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다 스승
네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문중의 냄새도 맡지 못하고 타성받이 집단에 끼어 외톨이로 자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마음속에 스승으로 모실 진정한 멘토를 만나지 못했다. 주변 환경 탓이 아니라 순전히 내 마음 탓이란 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서서히 느끼고 있다.
어깨너머가 나의 스승인 셈이다. 살아오면서 모든 걸 어깨너머로 해결했고 성취될 때마다 기뻐했다. 그러나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이 세상에 스승 아닌 것이 없다. 삼라만상이 훈장이요 산천은 물론 바람과 구름까지도 인생 독본이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고 했듯이 바위 하나, 풀꽃 한 송이도 스승 아닌 게 없다.
꼭 스승 앞에 무릎을 꿇어앉아 가르침을 받아야 사제지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나라 때 사상가 이지는 "벗(友) 앞에 스승(師)자를 붙여 벗을 스승으로 모시지 못할 이유가 없고 스승으로 모시지 못할 정도면 벗도 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어깨너머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도(道)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이 된다.
#어깨너머 배운 기술도 제법 쓸만해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많은 스승을 만난 것은 분명하다. 깡패 시인, 걸레 같은 스님, 게으른 예술가, 거지 시인, 직업 없는 풍류객, 하나님을 믿는 사기꾼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들에게서 어깨너머로 무엇인가를 배웠다. 취할 것은 취하고 뱉을 것은 뱉었다. 그들이 바로 교재였고 교훈이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생선회 치는 기술을 이야기하려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겨우 붙잡아 제자리에 앉혔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바닷가로 떠돌다 생선회 치는 법을 은연중에 습득했다. 그 기술이 연조가 깊어지면서 조금씩 더 숙달되고 터득되어 일식집 주방장을 따라가진 못해도 웬만한 칼질은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해 낼 수가 있다.
지난 초여름에 충남 서천의 마량포구에서 자연산 광어 축제를 연다기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네 사람으로 구성된 서해기행팀을 급조하여 날짜에 맞춰 달려갔다. 물론 어깨너머로 배운 칼질이 한몫 단단히 하리라 믿고 생선회 칼 세 개에 날을 세웠다.
#광어회 안주와 멋진 술 노래가 절로
보령을 지나 잠시 길을 잘못 들어 닿은 곳이 무창포 어시장이었다. "그곳이나 여기나 값은 비슷해유. 어느 누가 축제라고 손해보고 팔겠어유"라는 느린 충청도 말씨에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3.5kg짜리 광어를 7만원에 사서 아이스박스에 넣고 보니 기분은 좋았지만 약간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장대 옆 방파제에 앉아 광어회 안주로 화랑이란 멋진 술을 꺼내 서해기행 자축연을 벌였다. 약간은 비릿한 갯내음이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간질였으나 코는 거부하지 않고 심호흡으로 받아들였다. 한 병만 더 마셨어도 노래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량포구에 들어서니 온통 광어 판이었다. 우리는 축제장에 나온 가장 큰 놈 한 마리를 잡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연산 광어가 kg에 1만3천원이었다. 한 손으로 들기가 벅찬 5.8kg짜리를 7만5천원에 찍어 아이스박스에 밀어 넣으니 들어가질 않았다. 대가리와 꼬리를 자른 후 억지로 밀어 넣었다. 2박 3일 동안의 식량 겸 안주가 준비된 셈이다.
우린 새만금의 긴 다리를 건너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합구마을의 나비팬션(063-583-0165)에서 짐을 풀었다. 휴대용 도마보다 여섯 배쯤 큰 광어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회칼을 잡으니 광어는 너무 크고 칼은 너무 작아 겁이 덜컥 났다. 어깨너머 실력이 감당해 낼지 의문이었다. 전쟁터 야전병원의 군의관처럼 알코올도 없이 수술에 임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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