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교사 박정희는 1937년부터 1940년까지 3년 동안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전인 교육을 실천하는 데 힘썼다. 또한 김영기 선생을 비롯한 조선인 교사들로부터 배운 민족혼의 중요성을 심어주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당시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방정환(方定煥) 선생을 연상시키는 선생님'이라고 하였다. 또한 제자 정순옥(鄭順玉)은 이렇게 회상하였다.
"선생님께서 부임하셨을 때 저는 소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동무들 몇 명이 저의 집을 찾아와 새로 오신 선생님께 가보자고 하기에 선생님 하숙집을 찾아갔습니다. 어린 호기심에 선생님 방 안은 얼마나 장치가 잘 되어 있나 하고 살펴보았습니다. 선생님 책상 위에 커다란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사진에 배가 불룩 나오고 앞가슴 양편에 단추가 죽 달려 있는 외국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영웅 나폴레옹'이라면서 그의 전기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4월 어느 날, 봄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가지고 학교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등산복에 어깨에는 나팔을 메고 기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장난을 하거나 줄이 삐뚤어지면 한 대씩 맞아가면서 목적지인 문경 남쪽 진남교(鎭南橋)에 도착하였습니다."
"어느 일요일, 저희들은 선생님과 일본 선생 두 분이 노는 자리에 갔습니다. 일본 선생 한 분이 말하기를, '조선 여성은 예의가 없느니, 젖가슴을 다 드러내고 물동이를 이고 다니느니'하고 우리나라 여성들의 흉을 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를 향해서 우리말로 '너희들 저 말 잘 새겨들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끼리 있을 때는 꼭 우리말을 쓰자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철없는 우리들은 아무 의미도 모르고 '선생님, 조선말 하면 퇴학당하는데 왜 그래요'라며 반박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교사 박정희에 대한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귀결된다. 아침마다 나팔 불고 청소에 철저한 사람, 운동과 병정놀이를 좋아하고 학생들과 잘 놀아주는 선생, 일본 사람들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투지를 불어넣어 주던 선생,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제자들을 사랑한 선생, 술을 좋아하는 교사, 가정방문을 많이 하고 학부형들과 잘 어울렸던 교사, 일본인들도 어려워한 대담한 배짱을 가진 교사, 그런가 하면 교사로 만족할 분이 아니라는 느낌을 준 선생….
박정희는 대통령 시절에 "산으로 둘러싸인 문경이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회고 했었다. 답답한 것은 단순히 지형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한 그에게 있어서 나팔은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소년기에 이순신과 나폴레옹의 전기를 읽으면서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대구사범학교 시절에 그런 소질을 확인한 터라 교사가 되어서는 그 꿈을 구체화시켰다. 교사로 부임한 첫해, 그가 담임했던 반의 급장이었던 주영배(초등학교 교장 역임)는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이 다음에 뭐가 될 낍니꺼?"
"나는 대장이 될란다. 전장에 나가서 용감히 싸워 이기는 대장이 될란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서 학교 앞산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편을 갈라서 전쟁놀이를 시켰다. 나무 막대기를 주워 와서 총으로 사용하도록 했고, 목검을 들고 '얏, 얏' 하면서 검도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가을 운동회 때 전쟁놀이를 단체 경기로 보여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무렵 일본군은 중일전쟁을 확대시켜 대륙의 심장부로 뛰어들고 있었다.
1938년 들어 만주군관학교에 시험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순아 여인의 하숙집에서 나와 학교 숙직실에서 기거하기 시작하면서 시험공부를 할 시간도 갖게 되었다. 마침내 1939년 가을, 만주군관학교에 입학시험을 쳤다. 그 뒤 박정희 선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떠난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다들 섭섭해서 학교로 찾아뵈러 갔을 때, "마지막으로 부탁할 말은 공부 잘해서 씩씩하고 굳센 조선의 여성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뒤 받은 편지 겉봉에는 만주군관학교라고 적혀 있었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