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용서로 한 해 마무리를…

한 장뿐인 달력을 보면 잊혀지지 않는 책이 생각난다. 그것은 마이클 크리스토퍼스의 희곡 '검은 천사'이다. 이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독일군 장군이었던 엥겔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에서 실형 선고를 받고 30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겨우 출옥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려는 시점에 비극적인 사건이 생긴다. 모리라는 한 프랑스 신문 기자가 그의 모든 과거를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사형에 처형되지 않은 엥겔을 죽이기 위해 동네 주민들과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왜냐하면 모리의 가족과 그들이 살고 있었던 동네 주민들이 엥겔의 군대에 의해 비참하게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모리는 깊은 분노의 상처를 안고 있던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엥겔이 숨어 살고 있는 오두막집에 불을 지르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모리는 엥겔을 처벌하기 전에 그 비참했던 학살 사건을 자세히 알기 위해 한밤 중 그를 찾아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복수심에 불타 심문하던 모리의 마음에 점점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회의가 든 것이다.

모리는 엥겔의 영혼은 물론, 자신의 것까지도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리는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엥겔에게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권유한다. 엥겔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그는 모리가 자신을 용서해주면 피신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리는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모리는 엥겔의 목숨만은 구해줄 수 있지만 그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날 밤 냉혹한 군중이 몰려와 오두막집을 불사르고 엥겔과 그의 아내를 총으로 쏴 죽여버리는 것으로 희곡은 끝을 맺는다.

엥겔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가 아내와 더불어 죽음을 택하면서도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이 무엇인가. 또 복수의 칼은 거두었지만 모리가 진정 엥겔에게 줄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용서'이다.

용서는 삶의 리얼리즘이며 미움을 삭이는 힘이다. 또 용서는 증오심과의 대결이며 굴레로부터의 자유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건너야 할 다리를 부수는 것이다. 용서 못 하는 사람은 항상 미움과 증오의 감옥에 살게 된다. 용서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희락과 기쁨,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게 된다. 용서의 위대한 삶의 실천가였던 예수님은 창으로 자신의 심장을 찌른 자까지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간, 이웃과 용서의 장을 만드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준모 대구 성명교회 목사'대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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