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군인의 길

중국 남송(南宋)의 명장 악비(岳飛)는 관우(關羽)와 함께 중국 한족(漢族)들이 가장 존경하는 무인이다. 남송은 건국 초부터 금(金)나라에게 시달렸다. 수도가 함락되는 등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남송의 수호자로 악비가 등장한다. 악비는 금나라와의 전투에서 연속해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금나라와의 화평을 주장한 재상 진회(秦檜)의 모함을 받아 투옥되고 곧 살해된다. 그의 나이 39세 때였다.

진회가 죽은 뒤 악비는 명예를 회복한다. 남송 효종은 악비에게 시호를 내리고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했다. 이후 악왕(鄂王)으로 추봉되어 항주(杭州)서호(西湖) 부근의 악왕묘(岳王廟)에 배향되었고, 관우와 함께 무묘에 합사되었다. 악비는 경기도 일대에서 세거하고 있는 청해(靑海) 이씨(李氏)의 선조와 연결된다고 한다. 청해 이씨의 시조 이지란(李之蘭)이 악비의 다섯째 아들 악정(岳霆)의 6세손이라는 것이다. 청해란 본관도 악비의 고향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졌다.

알다시피 이지란의 본명은 퉁두란(佟豆蘭)으로 원나라 말기 고려에 귀화했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성계가 일찍이 "말달리고 사냥하는 재주는 사람들이 혹시 따라갈 수가 있지만 싸움에 임하여 적군을 무찌르는 데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지란은 용장이었다. 이로 미뤄 악비의 후손들 역시 악비를 닮아 무용을 뽐낸 모양이다.

악비 생전에 누가 악비에게 천하는 어느 때 태평해지느냐고 물었다. 이에 악비는 "문신불애전(文臣不愛錢), 무신불석사(武臣不惜死), 천하태평의(天下太平矣)"라 답했다고 한다. 문신이 돈을 탐내지 않고, 무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천하는 태평해진다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태 이후 우리 군이 십자포화를 얻어맞고 있다. 군과 군 수뇌부를 빈정대는 블랙유머까지 등장했다.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가죽 점퍼나 얼룩무늬 위장복을 걸친다. 이어 지하 벙커로 들어간다. 그리고 바로 미국과 연락을 취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대통령과 한국군 장군들이 취하는 '전쟁대비 수칙'이라며 네티즌들이 희화화한 것이다.

특히 군 수뇌부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면서 육군참모총장이 교체됐다. 6개월 만에 경질돼 육군 내에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사고는 해군에서 터졌는데 육군을 손대느냐는 둥, 대통령 후배를 총장에 앉히기 위해 바꾼 것이라는 둥 구설이 잇따르고 있다. 모양새가 사나운 것은 틀림없지만, 전임 육참총장이 '돈을 사랑한 무신'이었던 탓에 낙마시킨 것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신'을 중용하면 될 터이다.

하지만 사고만 터지면 전 정권 탓을 하는 나쁜 습관은 버리는 게 좋겠다. 한나라당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태 이후 군의 잘못된 대응을 놓고 햇볕정책으로 인해 군 기강이 느슨해진 탓이라며 그 책임을 전 정권으로 돌렸다. 잘되면 제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이쯤 되면 고질병이다. 설사 전 정권의 정책이 잘못됐다손 치더라도 구습을 단절하지 못한 책임은 당연히 현 정권에 있다.

'황산벌'은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맞서 벌인 최후 항전을 소재로 한 코미디영화다. 그저 웃고 즐기는 영화로 기억할 뿐, 이 영화의 미학적 가치와 미덕은 잘 모른다. 그래도 한 장면과 대사는 뚜렷이 기억난다. 계백장군이 황산벌 출정에 앞서 처와 자식들을 베려는 장면에서 계백의 부인이 맞서는 대목이었다.

계백장군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면서 가족들을 자신의 검으로 베려하자, 부인이 장군의 앞을 가로 막았다. 부인은 "호랭이는 가죽 땀시, 사람은 이름 땀시 뒈진다"며 "뭐 잘해준 게 있다고 아이와 여편네를 죽이려 하느냐"고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우스우면서도 이상하게 코끝이 찡했던 신이었다.

악비와 계백 장군의 사례처럼 '군인의 길'은 험난하다. 국가 위기상황에선 죽음도 불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 임명될 군 수뇌부는 부디 돈과 보신보다는 이름을 남기길 바란다. 그러려면 군인의 길 전문 "나는 영광스런 대한민국 군인이다"부터 되뇌어야 할 게다.

曺永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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