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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의 시와 함께] 거울(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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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각각 그들 자신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 내가 나의 거울을 갖고 있듯이, 나와 사물은 서로 비밀이 없이 지내는 듯하여 각자의 가장 작은 소리까지도 각자의 거울에 비추인다. 비밀이 없음은 그러나 서로의 비밀을, 비밀의 많고 끝없음을 알고 사랑함이다. 우리의 거울이 흔히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거울 속으로 파고든다. 내 모든 감각 속에 숨어 있는 거울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사물을 빨아들이는 거울. 사물의 피와 숨소리를 끓게 하는 입술式 거울. 사랑할 줄 아는 거울. 빌어먹을, 나는 아마 시인이 될 모양이다.

사물이 제각각 자신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는 발견이 이 시의 화두이다. 거울은 단지 사물의 겉모습만을 비추는 기능에서 나아가, 각각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되비추고, 대상의 이면이나 심연을 얼핏 보여주는 데까지 심화된다. 이면이나 심연은 일테면 '비밀의 많고 끝없음을 알고 사랑함'으로 표현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깊은 되비침을 통하여 "우리의 거울이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적 전성(轉性)이야말로 시라는 언어 예술의 핵심이자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시는 언어라는 거울을 통해 사물의 숨겨진 이면이나 심연을 드러내 비추는 것이자, 그것들의 몸 바뀜(전성)을 불러오는 주문(呪文) 같은 것이다. 거울은 그리하여 시와 동의어가 된다.

시란 사물을 빨아들이는 거울이자, 사물의 피와 숨소리를 끓게 하는 '입술式 거울'이다. 다시 말해 "사랑할 줄 아는 거울"이다. 그러니 시인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일찌감치 타고난 좋은 시인이 된 것일 테고. 나 또한 그 옛날 대학생이던 문청(文靑)시절에, 이 시에 매혹되며, 시인이 되고 말 것 같은 예감에 빠져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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