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90년, '우리가 이겼노라'며 승전(勝戰)의 기쁨을 전한 뒤 그리스 용사 페이디피데스는 숨을 거뒀다.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이라는 나쁜 소식을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알리고 있을까? 환자가 암으로 진단 받으면, 그 가족은 환자에게 사실을 숨기기 원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충격으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은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숨을 거둘 때까지 숨겨야 할 지, 알려야 할 지 갈등하게 된다.
이태호(가명'70) 님은 기침이 심해서 병원에 갔는데 말기 폐암이었다. 뼈까지 전이돼 수술도 불가능했고, 항암치료도 힘들었다. 그는 평소 불 같은 성격이었다. 그래서 출가한 세 딸과 할머니는 나쁜 소식을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환자에게 알리면 안 된다"고 입원 첫날부터 신신당부를 했다. 오른쪽 엄지와 중지가 절단된 그는 삶의 상처도 있었겠지만, 세 딸을 훌륭히 성장시켰다. 자원봉사자가 읽어 주는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라는 책 4권을 사서 손자에게 선물도 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 그러나 그는 늘 왜 이렇게 기침이 나는지, 어깨가 아픈지 알고 싶어했다.
막내딸은 대체요법 주사제를 아버지에게 쓰기를 원했지만, 나쁜 소식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기침하면서 피가 나오자 왜 그런지 그는 알고 싶어했다. 폐암에 대한 증상이 나타나면서 그는 많이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나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쁜 소식을 전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항불안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임종을 맞이했다.
경험상 나쁜 소식을 알고 있는 환자는 불안감이 덜 했다. 'SPIKES'는 나쁜 소식을 전하는 단계를 정리한 가이드라인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전문 의료진과 가족이 함께 알리는 나쁜 소식은 환자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나쁜 소식을 잘 알리는 것은 죽음이 다가온 사람을 단순히 말기암 환자라는 생물학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실존적 존재로 인정하는 배려가 될 수 있다. 최현식(가명'80) 님은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고, 통증이 심해서 입원했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한 아버지의 평소 뜻에 따라 맏딸이 모든 사실을 천천히 전했다. 그는 감정의 흔들림 없이 담담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입원 후 통증이 조절되자 "내가 마지막으로 시내에 볼 일이 있는데 외출을 허락해달라"고 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맏딸이 세 형제에게 아버지께서 마지막 선물을 주셨다고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쁜 소식이 불행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사나 가족은 슬픔을 견딜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은 슬픔이 지나가야, 평온이 찾아온다는 것을 평온관(호스피스병동)생활을 하면서 얻은 지혜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