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과 구이저우성, 쓰촨성 등 중국 서남지역 소수민족의 습속과 사랑, 고민, 슬픔,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 앞에 선 그들의 불안을 그려낸 책이 출간됐다. 주류 민족의 핍박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든 사람들, 척박한 땅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삶의 터전을 일구고,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장샤오쑹과 류이, 허핀정, 라무가투싸 등 중국 인문학자 네 사람이 소수민족 마을을 찾아다니며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 전문 사진가 5명이 120컷의 사진을 보탰다. 여기에 중국신화 전문가인 김선자 교수가 번역하고 상세한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돕는다. 지은이들은 단순한 여행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소주민족의 옛날과 오늘, 두려운 미래를 흥미롭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윈난성의 소수민족 지눠족들에게는 대대로 불러온 '바스의 노래'가 있다. 얼마나 오래된 노래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바스'란 같은 씨족 내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며,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흔히 '바스의 노래'는 애끓는 사랑의 노래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사랑했으나 혼인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지눠족 사람들은 타오르는 관솔 불빛 아래에서 손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풀을 밟고 춤추고 노래한다.
'이 즐거운 잔칫날/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질투해서는 안되지/ 이 장엄한 의식에서/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손을 잡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되지/ 그렇지 않으면/ 채로께서 가시 돋친 넝쿨로 너의 입을 꿰매 버릴 거야/ 채로께서는 바늘로 너의 입술을 바느질해 버릴 거야.'
우울한 선율의 '바스의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 무엇이 있다고 한다. 간절히 소망했으나 이루지 못한 사랑,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슬픔과 고통, 천만 번 죽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기다림 등 사람살이의 갖가지 감정이 그들의 노래 속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구이저우성 충장현 산골짜기에는 둥족이 사는 잔리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인구증가를 성공적으로 조절해 생태균형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 마을은 1949년 이후 지금까지 인구 자연증가율 0%, 형사사건 발생률 0%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70년대 중반부터 가족계획을 실시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몇 백 년 전부터 이미 적정인구를 알았고, 적정인구를 유지해왔다. 잔리 사람들은 현대화가 무엇인지, 환경오염이 무엇인지, 인구폭발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과 자연을 건강하고 풍요롭고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성장을 억제한 것이다.
산속 오지에 살았고, 현대의학을 몰랐지만 그들에게는 피임약이 있었고, 아이를 그만 낳게 하는 약도 있고, 심지어 태아의 성별을 바꾸는 신비로운 환화초라는 약도 있었다. 약 처방전은 엄격한 비밀이며, 약사는 모두 여성이다. 그녀들은 어려서부터 의술을 배우지만, 반드시 중년이 되어야만 약을 조제할 수 있다.
잔리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마을 어른들에게 노래를 배우고, 비파를 타고, 우퇴금(牛腿琴) 뜯는 법을 배운다. 노랫말은 세상사를 모두 포함한다. 효도의 노래, 부모의 노래, 농사의 순서를 알려주는 노래, 사랑의 노래, 생활의 노래 등이다. 그들에게는 문자가 없다. 아이들은 노인들이 부르는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둥족의 예의를 배우고, 습속과 금기를 알아간다. 역사와 전설, 생존지혜를 모두 이렇게 배운다. 이 배움이 끝나야 그들은 성년이 되고, 진정한 둥족으로 인정받는다.
책은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지켜온 마이너리티의 생활과 습속을 담백하고도 흥미롭게 풀어놓고 있다. 309쪽, 1만9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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