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성모당

대구 남산동에 천주교 대구 교구청이 있다. 교구청 언덕에는 성모당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 자주 간다. 큰 나무들이 경건하게 서있고, 성모굴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암굴 안에 모셔진 마리아상을 보고 있으면 촛불만큼이나 따듯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사람들은 서거나 앉아서 조용히 고개 숙인 채 기도를 드리고 있다. 파란 잔디와 구구구 우는 비둘기들이 걷거나 날아다닌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란히 선 나무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길게 늘어나,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풍경인 듯 신비롭다. 시간의 앞과 뒤가 순서 없이 고여 흐르지 않는 것 같고, 나는 한없이 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영원한 침묵과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다져놓은 침묵과 명상의 기운이 안개처럼 흐른다.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으면, 미세한 떨림과 깃털 같은 부드러움이 내 주위를 감싼다. 따뜻한 온기가 겨울 뜰의 햇살처럼 간지럽다.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정화된 공간은 세상으로부터 경계지워진다. 맑고 투명한 공기는 손가락으로 퉁기면 와인잔처럼 째앵 하고 울릴 것만 같다.

머리가 복잡하고 사는 일에 지치면 나는 문득 성모당에 간다.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오늘도 기도하고 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들로부터 전해지는 간절함을 긍정한다. 그들의 침묵에는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간다.

그러나 나는 신을 모시러 가지 않는다. 내 안의 신을 조용히 발견하고 싶다. 나는 예배당에서, 성당에서, 그리고 절간에서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신을 내 안에서 가만히 따로 만나고 싶다. 언제나 사람이 문제다. 나는 영적인 풍경 속에서 늘 사람을 지우곤 한다. 조용한 숲속에 홀로 서서 귀 기울이면 어느덧 그곳에 신이 있음을 본다. 목사님의 매끄러운 설교보다 손때 묻은 성경책에서 신의 위로를 듣는다.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불경소리보다 장식 없는 침묵의 암자에서 부처님을 만나고 싶다. 성당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이 일어났다 앉았다 바쁜 그들보다, 신부님의 화려한 옷 문양보다 경건할 때가 많다.

세상에 가득한 모순이 힘에 부칠 때, 몸이 스스로를 끌어내릴 때, 반복되는 내 마음의 간사함에 지쳐갈 때, 우연과 혼돈이 폭력처럼 엄습할 때, 스치는 바람결에 신의 숨소리를 듣고 싶어 오늘도 나는 성모당에 간다. 그리고 부질없는 욕망에 끌려다니는 초라한 내 육신의 피곤함에 고개를 숙인다. 무한한 창조적 긍정, 그 힘으로 세상을 내려놓고 싶다. 발치에 떨어지는 황금빛 햇살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리우/미디어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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