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올 수주목표 3조…대표 출향 건설사 돼야죠"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서희건설 이봉관(李鳳官'66) 회장의 접견실은 소박했다. 넓지 않은 공간, 값나가는 미술품이나 화려한 장식도 없다. 각종 감사패 등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자그마한 신라 왕관 모형.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 친필로 꾸며진 8폭 병풍. 이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무척 존경한다고 직원이 귀띔했다.

인터뷰를 위해 들어서는 단아한 모습의 이 회장을 보며 접견실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건설업에 진출해 지난해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하고 도급순위 40위에 오른 중견 건설사라는 선입관이 무너졌다.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다 매출액이 큰 대규모 아파트가 아니라 학교 교회 병원 등 공공시설 건설로 달성한 1조원이라 더더욱 알찬 회사다. 그가 인터뷰 도중 여러차례 '돈을 잘 못 번다'거나 '작은 회사'라는 말을 한 것도 몸에 밴 겸손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양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나 월남, 외가인 경주에서 자란 이 회장의 머릿속은 온통 경주다. 재경 경주경제인연합회장, 재경 경주향우회 회장, 재단법인 문화장학회 이사장, 재경 문화중고 총동문회 회장'''.

'문화장학회'는 고향에 대한 보은(報恩)이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러 월북했다가 돌아오지 못했고, 어머니마저 편찮아서 학업을 계속하기가 힘들었다. 공부 외에는 그 상황을 벗어날 길 없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경주 문화중'고를 인수한 레이몬트 프로보스트 선교사. 무작정 찾아간 딱한 모자에게 선교사는 어머니의 수술을 알선해주고 그에게는 장학금을 지원,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왔다.

이 회장은 경주 얘기부터 꺼냈다. 신라에 대한 자부심이다. "신라는 몇천년 전에 여왕을 내세웠어요. 남녀평등 사회를 구현한거죠. 세계사적으로도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귀한데 조선이 남존여비 사상으로 망친 겁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와 이스라엘의 어머니 얘기도 했다. 세계사에 해박했다.

그리고는 신라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거론했다. "신라 귀족의 자제는 화랑이 됐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전장으로 달려갑니다. 병역을 기피하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러운 역사 아닙니까? 27대 선덕여왕 때 만든 첨성대만 해도 그래요. 하늘의 별 구경이나 하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바로 경제예요. 천문을 관측해 비가 많이 올지, 흉년이 들지 연구했어요. 신라는 위대합니다."

이런 이 회장에게 소망이 있다. 신라의 위대함을 알리는 드라마와 영화를 만드는 것. "잘사는 이스라엘 민족은 유럽에서 질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민족이란 욕을 듣고 있었죠. 그런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이미지를 위대한 민족으로 한순간에 바꾼 것이 영화 십계와 벤허입니다. 미국에서 돈을 번 유대인들이 만든 영화입니다. 우리 조상의 우수성을 문화를 통해 자손과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KBS가 방영 중인 백제 근초고왕과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이어 제작될 신라 태종무열왕 드라마에 그는 관심이 많다. 최양식 경주시장이 신경을 쓰고 있는 신라 6촌이야기를 드라마화하는 작업도 지원할 작정이다.

사업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인터뷰 하는 날이 마침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이 각각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등 건설업계가 뒤숭숭했다.

이 회장은 "개발 사업은 내리막일 때 대책이 없고 사업을 할 때는 실패해도 다른 자금으로 메울 수 있을 만큼만 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빨리 큰 돈을 벌 수 있는 사업보다는 속도가 늦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을 선호한다.

'느림의 미학'에 빠져 있는 이 회장은 요즘 자신만만하다. "올해와 내년이 지나면 서울에서도 살아 남는 중견 건설업체가 몇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서희건설은 당당하게 살아 남을 것입니다. PF 자금 부담이 거의 없거든요."

서희건설의 올해 목표는 3조원 수주에 매출 1조4천억원이다. 매출 기준으로는 지난해보다 40%를 올린 목표다. 사업다각화 일환으로 해외 프로젝트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올해 1월 해외 첫 프로젝트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학교를 착공했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괌 등지에 현지 지사를 설립해 주택'호텔'공항'도로'항만'플랜트 공사 수주 활동도 벌이고 있다. 규모가 작더라도 안정적인 프로젝트를 수주한다는 것이 원칙임은 물론이다.

이 회장이 자란 곳은 경주지만 사회의 첫발은 포항에 내디뎠다.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포스코 공채 2기로 입사했다. 그래서인지 서희건설은 경주 포항에선 쟁쟁하지만 대구에서는 덜 알려져 있다.

최근들어 대구에서도 '서희건설'을 자주 접하게 됐다. 지난해 10월 달서구 유천동 AK그랑폴리스 아파트 1천881가구를 시공한 것이 전환점이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메인 프레스센터와 국제방송센터로 활용될 대구스타디움 복합문화공간도 서희건설의 작품이다. "AK그랑폴리스 분양률은 현재 72%입니다. 중소형 아파트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기대 이상입니다. 부산은 이미 아파트 가격이 치솟고 있고, 대구도 조만간 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통 주택 경기는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확산됐는데 지금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경기가 올라오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AK그랑폴리스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서희건설은 영남지사를 대구에 설립했다. 대구경북 출신의 대표적 출향 건설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석의 일환이다. 출향 건설사로 월드건설이 이름을 날리다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수도권에 진출했던 청구, 우방, 보성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대구경북 주민들은 굵직굵직한 출향 건설사가 즐비한 호남과 비교, 서희건설의 성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서희건설같은 출향 건설사가 40위가 아니라 10위권의 대형건설사로 발돋움해야 성에 찰지도 모른다. 지역에 기여를 많이 해 지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번듯한 건설사를 기다리는 것. 그런 대구경북 주민에게 서희건설이 어떻게 화답할지 자못 궁금하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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