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이시영에 버금갈 도전.'
주업이 아닌 다른 분야의 도전은 언제나 벅차다. 이시영은 미모가 생명인 여배우가 험한 운동인 복싱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된데다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충분히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에 자극을 받아, 볼펜을 굴리는 직업을 가진 기자 역시 다른 종목에 도전했다. 한때 전국민적인 사랑을 독차지했던 민족 전통의 운동인 씨름이다. 엄청난 힘이 요구되고, 몸의 유연성도 필요한 종목이다. '어차피 인생은 도전'이라는 문구를 머리에 되새기며, 이시영의 마음가짐과 자세로 몸을 던졌다. 벌써 한 달째 훈련 중이다.
때마침, 생활체육 대구시씨름연합회가 민속경기인 씨름의 활성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 지난달부터 대구시민운동장 내 대구씨름장에서 무료 씨름교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씨름교실은 연중 매주 월·수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8시까지 1시간 30분 동안 열리는데 기자는 매주 월요일마다 배우고 있다.
◆이시영-홍수환, 권성훈-김정필
멘토와 멘티는 무언가를 배우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하다. 특히 멘티 입장에서 멘토가 선생이자 정신적 버팀목으로 힘들 때 생각만 해도 큰 힘이 되는 존재다.
여배우 이시영에게는'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명언을 남긴 4전5기의 홍수환 복싱 영웅이 있다면, 기자에겐 대구 출신의 자랑스런 26·27대 천하장사 김정필이 든든하게 멘토 역할을 해줬다. 지난해 이미 씨름 황제 이만기 인제대 교수를 비롯해 씨름의 황태자와 슈퍼 두꺼비인 지역의 이태현과 김정필 전 천하장사를 인터뷰한 터라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씨름교실 제목도'천하장사 김정필에게 배우세요'로 정해 지역의 씨름 애호가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 김정필 씨는 기자에게 "권 기자, 몸도 유연한데다 힘도 있으니까 한번 배워보라"며 "올해 생활체육씨름대회에도 참가하자"고 권유했다. 기자는 이 말에 용기백배해, 기꺼이 몸을 던지기로 했다.
현재 몸무게 91㎏, 키 182㎝. 씨름하기에 하드웨어(육체)적 조건은 나쁘지 않다고 씨름 관계자들이 말했다. 매주 월요일 씨름교실이 끝나고 나면 김정필 씨를 비롯해 함께 운동하는 이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장해식 대구시씨름연합회장도 "기자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잘 배워보라"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나이로는 중년부에 해당하는 기자는 올해 대구시 생활체육씨름대회에 참가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 볼 작정이다. 이시영처럼 우승하지 못해도 의미 있는 도전으로 개인사에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매주 한 명과 실전 대결,'쓰러집니다'
기자의 무모한 도전은 연습 중에도 계속됐다. 멘토인 김정필 씨는 첫날 샅바 잡는 법과 씨름 시작 전 자세 잡는 법 등을 가르친 뒤, 시험 삼아 기자보다 체중이 10㎏ 이상 적은 고교 1년생 씨름선수와 한번 붙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시작하자마자 앞무릎치기를 당해 모래판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냉엄한 현실이었다. 몸의 중심이 앞쪽으로 쏠려있다 보니 이 고교 선수는 시작하자마자 약점을 파고들었다. 한번 더 도전했지만 역시 알고도 앞무릎치기에 당하고 말았다.
그 다음주에도 연습 막판에 기자와 체격이 비슷한 영신고 1학년 씨름선수와 한판 맞짱을 떴다. 그러나 결과는 뻔했다. 배지기와 들배지기에 당하며 씨름판에서 허탈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때 멘토가 한마디 던졌다. "중학교 2학년 씨름선수한테 이기는 것도 힘든데 당연합니다. 고교 씨름선수를 이길 수 있으면 생활체육씨름대회 입상이 가능할 겁니다."
이런 어려움도 있었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니 오른팔에 없던 '알통'이 생기고, 샅바에 쓸려서 왼쪽 팔과 다리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통과의례다. '고통없는 영광은 없지 않는가?' 스스로 위로했다.
씨름 마니아를 자처하는 기자의 연습 파트너인 정승영(49·항공텍스타일 대표)와 이두억(49·일흥종합철물 대표) 씨는 "젊었을 때 씨름하면 모두가 열광했다"며 "예전에 너무 좋아했던 씨름을 이렇게 모래판에서 다시 샅바를 잡고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둘은 동갑내기인데 기자 역시 띠동갑 범띠로 지난주에는 연습이 끝나고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으면서 씨름에 관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배지기와 잡치기, 안다리와 밭다리
세번째 씨름교실부터 본격적인 기술을 가르쳐줬다. 먼저 배지기다. 사실 그 전에는 배지기와 들배지기를 구분하지 못했는데 이제 확실히 익혔다. 오른 다리에 중심축을 두고, 왼쪽 엉덩이를 상대편 다리 중심 사이로 파고들어 오른쪽으로 폭발적인 힘을 줘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니 흥이 났다. 유도 7단(전국체전 우승)에 43세부터 씨름을 해오며 체력관리를 해 온 은성기(65) 씨에게도 내리 4판을 졌지만 배지기 기술로 한 판을 이겼을 때는 짜릿했다. 잡채기는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며 샅바를 잡은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왼쪽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면 된다.
안다리와 밭다리 역시 샅바를 잡은 상태에서 틈을 보다 순간적으로 샅바를 당기며 상대방의 안쪽으로 다리를 걸거나 바깥 쪽으로 걸어 넘어뜨리면 된다. 들배지기, 호미걸이, 덧걸이, 차돌리기, 뒤집기, 앞무릎 당겨치기 등의 난이도가 있는 기술은 차차 배울 예정이다.
기자와 함께 씨름교실에 함께하고 있는 이들도 다양하다. 매주 만나는 김경두(12·수창초교 6년) 군은 "운동이 많이 되고, 힘을 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돼 좋다"고 했으며, 유인애(18·여'대구과학대 레저스포츠과 1년) 씨도 "유도를 배우고 있는데 씨름이 중심잡는 데 큰 도움이 돼 매주 연습을 한다. 씨름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의 씨름왕 도전이 비록 예선 탈락을 종결되더라도 전통의 씨름 부활에 일조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겠다. '우리 민속 씨름은 좋은 것이여~.'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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