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파당(派黨)의 나라, 360여 년 전 못난 조상들이 했던 짓을 판에 박은 듯 따라 하는 나라,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360여 년 전 왕조시절로 돌아가 보자. 세칭 동인(東人) 세력을 꺾고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았던 서인(西人)파 공신(功臣)들. 집권 초엔 한 뿌리로 뭉쳤던 그들은 공서(功西)와 청서(淸西)로 갈라졌다. 혁명 주류 그룹인 공서는 다시 노서(老西)와 소장파인 소서(少西)로 갈라섰고 정권(인조) 말년엔 중국을 등에 업은 락당(洛黨=두목 김자점의 호를 딴 계파)과 원당(願黨=반대파 두목의 군호)이 생겨났다. 친노(親盧)파를 꺾고 집권한 한나라정권의 당파 쪼개기는 360여 년 전 서인(西人) 당파와 붕어빵처럼 닮다 못해 한 수 더 앞서간다. 친박(親朴), 친이(親李)에 주류, 비주류, 월박(越朴), 반박(反朴)에다 소장파, 중도파, 이재오계, 이상득계까지 나왔다.
친(親)이란 무얼 뜻하는가. 친(親)은 부모의 간절한 마음 같은 것이라고 파자(破字)하기도 한다.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멀리 자식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는가를 애타게 지켜보고(見) 있는 모습이란 뜻이다. 자식을 보살피고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에는 분열, 반목, 배신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MB를 위해, 박근혜를 위해 나무 위에 선 부모 마음처럼 진실된 신의와 충정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친이고 친박이라면 레임덕을 계산하며 계파 쪼개기에만 혼이 팔린 것은 가면을 쓴 친심(親心)이다. 공서'청서는 인조 집권 20여 년에 걸쳐서 4개로 쪼개졌지만 한나라당은 불과 3년 4개월 만에 친이 친박, 주류 비주류 신주류, 월박 반박, 소장파에다 중립파까지 찢어냈다. 저네들 파벌의 대장 이름을 딴 이재오 계파와 이상득 계파는 360년 전 자기 계파 두목의 호(號)를 따서 만든 락당과 원당을 그대로 빼닮았다.
문명과 물질은 풍요해졌을지 모르나 정신은 거꾸로 되돌아가다 못해 더 썩어가고 있다. 몸은 초고층 아파트에 하이브리드차를 타고 살면서도 정신은 초가집에 달구지 탈 때보다 더 썩어 있는 것이다. 첨단과학을 누리고 살면서도 과학벨트 같은 국가 과제를 풀어나가는 정치 의식은 호롱불 켜던 시대보다도 못하다. 그나마 그때는 권력은 썩어도 파당의 작폐를 상소(上疏)하는 곧은 목소리라도 있었다.
360년이 지난 지금은 그마저 없거나 사그라져 있다. (적잖은) 언론들조차 특정 정치 세력, 불법 강성 노조, 이상한 민주 단체나 극성스런 종북(從北) 집단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영합하거나 꼬리를 내린다. 부산저축은행이 악랄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지난 좌파정권 시절 10여 년 동안, 감사원을 우습게 보며 활개 칠 수 있었던 배경엔 그 은행의 회장, 사장, 감사부터 핵심 간부들이 특정 지역 고교 동창 일색이었기 때문이라는 배경 같은 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상소 정신이 없어서다. 그래서 오늘날 패거리 정치판에 360년 전 상소 한 장(1649년 효종 원년, 호조판서 원두표의 상소)을 소개한다. 여의도 패당(牌黨)들이 읽어야 할 충언이다.
'슬프오이다. 어찌하여 갖가지 이름의 붕당을 갈라 서로 곁눈질하고 알력을 빚어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괴롭히는 지경에 이르도록 하였는지. 지금 나라 안에 위로는 공경(公卿)에서 아래로는 벼슬 없는 평민까지 이런저런 당파(黨派)에 속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자기와 같은 당(黨)인 자는 도와주고 다른 당인 자는 배척하여 사리(事理)대로 논하지 않고 오직 자기 당이면 동조하고 남의 당이면 쳐부수기에 바쁘니 온 조정이 오로지 당파 논쟁만 일삼아 국사(國事)는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습니다. 비록 식견이 뛰어나고 남다른 사람이 있어도 자기 당에 속하지 않으면 백 가지 꼬투리로 헐뜯어 용납지를 않습니다. 용렬한 자라도 자기편에 붙으면 입을 모아 칭찬하여 반드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만듭니다. 그런 자들이 끼리끼리 벗이라 부르며 무리를 지어 밤낮으로 쑥덕거립니다. 이러니 천 가지 방법과 만 가지 잔꾀를 짜서 반대당을 누르고 자기 당을 건져내려는 계책만을 일삼습니다. 나라의 위태로움이나 백성의 근심스러움 따위는 강 건너 불 보듯 여기니 인심은 나날이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살림살이는 점점 쭈그러져 갑니다….'
지금 여의도 패당의 행태들이 360년 전의 상소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또 한 번 말해준다. 민중혁명은 소리 없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시각에 불붙는다. 빨간 숯불이 뜨겁다는 걸 손을 덴 뒤에 알아서는 이미 늦다는 걸 한나라당만 모르고 있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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