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얼굴, 명함'
현대인들이 업무 등의 이유로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먼저 꺼내 드는 것이 명함이다. 처음 대면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대신 한 장의 명함으로 이를 대신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명함은 나를 만나는 첫인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알리고 세일즈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명함은 나를 마케팅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간주된다. 사람들은 가로 9㎝, 세로 5.5㎝의 작은 종이에 나를 집약해 보여주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나를 표현하라
금복주 임직원들의 명함에는 회사의 대표 제품인 '참소주' 병이 프린트돼 있다. 명함 한쪽에는 금복주 회사의 회사 로고(CI)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대구경북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근한 참소주 병인 것이다. 이를 보면 굳이 글을 읽어보지 않아도 어느 회사에 근무하는지가 강렬하게 인상에 박힌다.
류일윤 글뿌리출판사 대표의 명함에는 커다란 빨간색 별과 함께 '아이들의 가슴 속에 별이 되는 책'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글뿌리'라는 출판사명을 보면 얼핏 봐서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이 짧고 강렬한 문장 하나로 그가 하는 일에서부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인지가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엠퍼시스'(Emphasis)의 디자이너 정창식 씨의 명함은 상당히 특이하다. 마치 옷의 태그처럼 보이는 얇고 길쭉하게 생긴 빳빳한 검은 빛깔의 종이에 금빛으로 로고만 새겨진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 로고 외에는 아무런 글자도 들어가 있지 않다. 그는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펜을 꺼내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명함을 건넨다. 사이즈부터 여느 명함과 다른 특이함이 있다 보니 한 번 이 명함을 받아든 사람은 여간해서는 그를 잊는 일이 없다.
한 보험사 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은 은빛의 카드 명함을 사용한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매끈한 명함이 보험설계를 통해 밝은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그의 직업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그녀의 명함은 여성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무런 글자도 넣지 않은 은빛 뒷면이 급할 때는 거울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 그녀는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식사를 하고 난 뒤 간편하게 얼굴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뒷면에는 아무 정보도 넣지 않은 채 남겨뒀다"고 했다.
광고홍보전문업체 콕스컴(COXCOM) 김동은 대표는 "최근 지인에게 받은 명함이 정말 이색적이어서 오래도록 간직할 것 같다"며 명함 하나를 보여줬다. 카드집 안에 고이 담긴 명함과 함께 네잎 클로버 모양의 금으로 만든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던 것. 김 대표는 "금으로 만든 책갈피다 보니 단가가 워낙 비싸 소중한 사람에게만 이 명함을 준다는 설명에 더욱 명함을 소중히 간직하게 됐다"고 했다.
◆단순하거나 복잡하거나
최근 명함의 트렌드는 단순한 것이 대세다. 가급적 정보의 양을 최소화하고 여백의 미를 살리는 디자인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콕스컴 김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회사명 등을 큼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인기였지만 요즘은 여백이 많은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세로 5.5㎝가 대부분이었던 폭을 줄여 한층 날씬해 보이는 디자인도 인기다. 김 대표는 "사이즈를 조금만 줄여도 한층 세련돼 보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변형 사이즈를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반면, 담기는 정보의 양은 극과 극을 달린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앞면에 로고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뒷면 하단에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작게 써넣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사진부터 경력과 소속단체 등을 깨알같이 적어놓는 경우도 있는 것. 교사 김모(57) 씨는 명함 가득 깨알 같은 글씨를 적어넣었다. 그가 졸업한 초'중'고'대학'대학원과 함께 지난 30여 년간 일하면서 거쳐 갔던 학교명을 빼곡히 적어놓은 것. 그는 "우리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상당 부분은 학맥에 좌우되다 보니 초면에 출신학교를 물어보는 경우가 잦아 아예 써넣게 됐다"며 "교사로 일하면서 거친 여러 학교 역시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정보이기 때문에 좀 글씨가 많아 보이는 단점이 있더라도 다 써넣었다"고 했다. 뒷면 역시 특이하다. 한의사인 아들과 며느리의 한의원 위치와 전화번호 등을 써넣어 조금이나마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지위가 높거나 누구나 알 만한 사람일수록 명함에 담는 내용이 단순하다. 반면 자신을 알려야 하는 직업일수록 많은 정보를 담으려고 한다. 김범일 대구시장이나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등 누구나 알 만한 인물의 경우에는 가급적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국정원 등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명함 역시 이름과 직장 전화번호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간략한 명함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QR코드를 명함에 새겨넣는 경우도 늘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 명함에 담긴 정보를 저장하기 편리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을 표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명함이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명함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천32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명함 사용자 중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명함'을 만들어 봤다는 응답 비율은 16.1%에 불과했다. 개성적인 명함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금박'한지 등 재질을 달리한다'(47.2%)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캐릭터 활용(19.7%), 내 사진 활용(15.0%), 나만의 금언'다짐'경구 넣기(12.1%) 등이었다. 김동은 대표는 "15년가량을 광고'홍보업을 해 왔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며 "명함도 하나의 디자인이라고 인식해 이에 따른 디자인비를 지불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에티켓도 중요
톡톡 튀는 명함으로 자신을 각인시키는 것도 좋지만 대인관계에 있어 명함을 주고받을 때 에티켓을 지키는 것 역시 그 사람의 첫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준다. 대구서비스교육센터 심정아 이미지컨설팅 강사는 "명함을 주고받을 때는 반드시 서서, 양손으로 혹은 한 손을 받쳐서 공손하게 주고받아야 하며, 이름이 상대방 쪽으로 보이게 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명함집에 명함을 넣을 때는 내가 봐서 바르게 명함을 넣어두는 것보다는 반대로 뒤집어서 상대방에게 바르게 보이도록 넣어두는 것이 편리하다. 또 명함을 건네는 데도 순서가 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명함을 건네야 하며, 방문객이 먼저 명함을 주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에 맞다.
명함을 받은 뒤에는 대화하는 내내 테이블 위에 명함을 올려놓고 그 사람의 직함을 불러가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식사자리에서 여러 사람의 명함을 한꺼번에 받았을 때는 테이블 위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게 이름만 보이게 순서대로 포개놓고 대화를 이어나가면 된다.
간혹 나중에라도 그 사람을 쉽게 기억하기 위해 명함에 메모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상대방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다. 심 강사는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명함에 메모를 하는 것이 예의에 맞지 않다고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공손하게 양해를 구하고 메모를 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긴다는 인상을 줘 오히려 '매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명함을 갖고 있지 않을 때는 받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죄송하지만 갖고 있는 명함이 없는데 받기만 해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한 뒤 상대방의 명함을 받는 것이 예의 바르게 보인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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