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듣고 싶지만 멀리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와 오래된 아파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지하주차장 출입구를 드나들 때 나는 경적이 무심한 시간을 만들어 준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심리적으로나마 유체이탈을 상상해 본다.
재미없어 뵈는 내 모습을 휙 지나 즐거운 표정의 아내가 있다. 결혼과 함께 그만둔 예전의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일을 어찌 참고 있었나 모르겠다. 인형을 깎고 소품을 만들고 온갖 도구들이 내 방 한가득 뒹굴고 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주부가 작업실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동선에 버리는 시간을 아까워하기 때문이란 것은 체험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듯했다. 스펀지가 깎이고 호피무늬의 천이 덧씌워지고. 팔불출이라 해도 내 아내는 정말 잘한다. 작업 내내 밝은 분위기의 그녀를 보며 내가 왜 여태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했나 싶었다. 여름에 있을 공연에 아내의 작품들이 무대를 활개치고 있을 생각에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점령' 당한 내 방에서 캐스퍼가 되어 시립극단으로 휘리릭 날아가 보니 아내에게서 보았던 즐거움보단 프로로서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37명의 배우들은 각자가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으며 배역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의 좌우에는 제작진들이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연구를 하고 있다. 45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캐스퍼의 눈에는 잡아먹을 듯한 배우들의 눈빛이 들어온다. 그 땀방울이 떨어지는 연습실 마룻바닥을 치고 날아 무대 작업실에 가 보니 여긴 완전 공장이다. 열 명 정도의 인원이 엄청난 공구에 굉음을 울리고 있다. 디자이너는 연방 색감을 보고 있고 망치와 드릴은 쉴 틈 없이 작업장을 울리고 있다. 땀과 먼지 그리고 장인정신이라 불릴 수 있는 그 노력이 버무려저 무대 미술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기톱에서 불꽃이 튀어올라 놀라 도망간 곳은 의상 제작소. 안으로 슥 들어가 보니 재봉틀 6대는 5초에 한 번씩 0.5초를 쉰다. 그러나 재봉사의 손은 틀이 쉬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옷감을 돌린다. 앉아서 일하는 재봉사 뒤로 일어서서 일하는 재단사의 가위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다. 그냥 죽죽 잘라나간다. 마치 면도칼 두 개를 교차해 만든 듯 옷감은 하염없이 잘려나간다. 기가 막힌다. 가장 먼 곳에는 의상디자이너가 만들어진 옷의 느낌을 살피며 회의를 하고 있다. 디자인 시안과 대본 그리고 며칠째 밤새운 스태프들의 고단한 뇌와 눈들이지만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각성제 삼아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얼하고 있나? 멍청하고 나태한 녀석이라 자책하다가 아니지 자책할 시간도 아깝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이 시간에도 자신의 연기에 목숨 걸고 달려드는 배우들과 자신의 분야에 명예를 걸고 임하는 스태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을 한다.
이완기(대구시립극단 제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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