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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활의 고향의 맛] 동강 래프팅과 닭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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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을 지키는 마음으로 래프팅을 즐기자

동강 탐사 이틀째. 래프팅 전문 업소인 고성리버 측에서 하루 정도 미루자는 연락이 왔다. 8시간 고무보트를 타려면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단다. 탐사대는 빈 하루 동안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동강 강변을 샅샅이 뒤져 보기로 했다.

밤새 추위에 떨다 새벽 5시에 기상한 대원들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곯아떨어진다. 내 옆자리 친구는 머리통에 무엇을 갖다 대기만 하면 그대로 꿈나라로 가버린다. 강변의 모든 산들이 강물 속으로 내려앉은 동강의 경관은 한 폭 그림이란 표현으론 턱없이 모자란다.

우린 정선읍 가수리 정선초교 가수분교 교정에 서 있는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서 기념 촬영을 했다. 못 말리는 정권이 댐을 막아 동강을 물속에 묻어 버린다면 이 나무도 결국 헤어나진 못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귤암리 귤하마을로 들어서니 '환경단체와 언론기관 출입금지'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곳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 양쪽으로 갈려 극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제장리를 출발하여 동강변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정선 시장에서 메밀전병 콧등치기 올챙이국수 등 각자 성미대로 음식을 시켜 먹었다. 화암약수탕과 아오라지를 돌아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옆 친구는 또 꾸벅거리고 있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일곱 번을 졸았다. "야, 너 아호 하나 지어줄게, 우수(又睡)선생이 어떠냐. 또 우 자에 잠 수 자. 좋지." 동강을 다녀온 후 한참 동안 그는 우수 선생으로 불리었다.

사흘째. 간밤에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다행히 날은 갰지만 강물은 황톳물로 넘실거렸다. 오전 9시 미팅 장소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래프팅 업소에 전화를 걸어 "무조건 출발하자"고 떼를 썼다. "사고가 나도 책임 못 집니다."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보트는 오전 10시쯤 대원 7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황토 강물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노는 젓지 않아도 보트는 저절로 흘러갔다. 맨 뒤의 가이드는 방향키를 조종하면서 "혹시 강물에 떨어지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라며 겁을 준다. 공포에도 칼날 같은 날이 있는가봐. 그날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디어져 갔다. 나리소와 바리소를 지나고 첫날 비박했던 제장리를 지났다. 강변의 풍경이 겨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트를 탄 직후 엄습해 왔던 공포가 용기로 변하더니 이젠 '동강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바뀌고 있었다. 물살은 거세어도 보트는 거침없이 흘러갔다. 연포분교 근처 황새여울에 이르렀을 때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트 좌현에 앉아 있던 두 친구가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손 쓸 겨를도 없는 찰나에 빚어진 일이었다. 보트는 보트대로 밀려갔고 친구들은 서로 엇갈려 떠내려갔다. 아무도 센 물살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없는 게 아니었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친구는 라이프재킷의 끈이 바위 모서리에 걸려 반듯하게 하늘을 향해 누웠고 다른 친구는 죽을 힘을 다해 물속 바위 위로 기어올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당초 계획했던 8시간 래프팅을 4시간으로 단축했다. 중간지점인 문희마을 우문제 씨 집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물에 빠진 두 친구는 조선 솥이 걸려 있는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느라 닭백숙이 들어와도 좀체 일어서질 못했다. 맛있는 토종 닭백숙을 먹으면서 바위 위에 누워 있다가 구조된 친구에게도 아호 하나가 주어졌다. 누울 와(臥)자에 바위 암(岩)자. 와암 선생.

그런데 우수와 와암이란 호를 지어 준 친구 그리고 고성리버 대표 이재업 씨는 더 이상 래프팅을 즐기지 못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지금쯤 그들 셋이 만나 은하가 흐르는 강에서 보트를 타면서 이승의 동강이야기를 하는지 그건 알 길이 없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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