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인도의 벵갈 지역에서 태어난 쿠디람 보세는 두려움을 모르는 강인한 소년이었다. 13세 무렵, 대중 강연을 듣고 영국의 지배를 받던 조국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학교의 비밀 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16살 때부터 경찰서에 폭탄을 설치하는 등 무장 투쟁에 뛰어들었다.
만 18세이던 1908년 4월에 그는 동료 프라풀라 차키와 함께 무자파르푸르의 유럽인 클럽 문 앞에서 마차에 폭탄을 던져 3명을 숨지게 했다. 그러나 숨진 사람은 그가 노리던 영국 관리가 아니라 그의 아내와 딸, 변호사였다.
그 직후 도주했지만 차키는 발각되자 권총으로 자살하고 보세는 체포되고 말았다.
죄없는 이들이 숨진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그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그는 항소하지 않았다. 사형을 선고 받는 순간 그가 미소 짓자 당황한 영국인 판사는 선고 의미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안다는 대답을 들은 그에게 판사가 진술을 허용하자 시간이 더 있다면 재판관들에게 폭탄 제조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여유를 보였다. 두 달 보름 후인 1908년 오늘, 교수형 당하는 자리에서도 미소를 띠며 최후를 맞았다. 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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