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해수욕은 여름방학의 로망이었다. 실제로 수영은 가까운 내에서 하는 물장난이 고작이었지만, 상상은 늘 색동 띠의 튜브와 돛단배, 갈매기 그리고 수평선 위로 뭉게구름이 떠있는 바다에서의 수영이었다.
바로 그런 해수욕장의 광경을 시원한 담채로 그려낸 투명 수채화 작품이다. 백사장엔 차양을 단 큼지막한 천막들이 늘어서있고 그 사이로 검게 탄 구릿빛 피부의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태양을 피해 그늘에 쉬기도 하고, 물가에서 나와 천막 사이를 오가는 분주한 이들, 해변에서 목격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단순한 이미지로 크고 작게 리듬감 있게 배열돼 있다. 간단한 몇 번의 붓 터치로 쉽게 묘사한 작가의 활수한 솜씨도 돋보이지만 경쾌한 느낌의 채색 감각이 탁월함을 뽐낸다.
멀리 수평선엔 대형 선박 한 채가 지나고 그 앞바다에는 작은 흰 돛단배가 밀려오는 파도를 경계로 원경을 구성한다. 가로로 한 번에 넓게 그은 묽은 물감이 물결의 느낌을 실감나게 표현한 것도 절묘하다. 수채화가로 이름난 이경희 선생의 1959년 제8회 국전 출품작. 이미 50년이 더 지난 포항의 여름 바닷가 피서지의 풍광을 손에 잡힐 듯 보여준다. 요즘처럼 형형색색의 화려한 수영복도 요란한 물놀이 기구도 없을 테지만 당시 해수욕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아주 행복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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