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우리의 공연을 보고 박수를 치며 흥겨워하는 관중들을 보면 힘이 나고 큰 보람도 느낍니다."
장애인 시설, 노인복지관, 양로원, 교도소 등 소외된 이웃을 찾아 위문공연 봉사를 하는 (사)대구문화예술단 서상복(53) 단장은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목 아래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1998년 대구문화예술단을 만든 그는 요즘 1주일에 2, 3번꼴로 공연을 기획, 연예인 섭외부터 무대장치와 감독, 연출, 특수효과, 조명 등 일인다역을 해내고 있다. 휠체어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그가 공연을 나갈 때면 부인 김태희 씨가 손발이 되어 준다. 공연 때마다 그가 현장에서 각종 무대장치를 직접 조종해야 하기 때문. 대구문화예술단은 지금까지 600회 이상 공연했다.
"최근엔 문화공연 혜택이 없는 농어촌 마을을 찾아 공연하는데 어르신들이 아주 좋아해요. 자랑같지만 우리 공연은 화려하고 수준도 상당합니다. 비눗방울도 날리고 무대 바닥에 안개도 깔고…. 최근 들어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졌어요."
서 단장은 32년 전 20을 갓 넘긴 나이에 교통사고로 경추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사고 전 건장한 몸으로 철공소를 운영했던 그는 이후 세상과 담을 쌓았다. 근 10년 동안 집안에만 머물렀다.
"나중에는 정말 사람이 그리웠어요. 바깥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죠. 그러나 막상 나간다고 해도 갈 곳이 없었어요. 남 보기 부끄럽기도 했고요."
사람 냄새가 그리웠던 그가 세상과의 소통 도구로 선택한 것은 아마추어 무선통신이었다. 1987년 한 번의 실패 끝에 아마추어 무선 3급 자격증을 딴 그는 집에 무선국을 차려놓고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다.
"무선통신을 하면서 나와 같은 장애인들이 세상을 살기에 불편한 점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1991년 중증 장애인들이 병원을 찾거나 외출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차량제공에서부터 이'미용, 목욕, 심부름 등 봉사를 하는 한국장애인봉사협회라는 단체를 만들게 됐죠."
이어 그는 1993년 장애인 가정에 책을 배달해주는 무료 도서대여 '사랑의 문고'를 열었고, 1995년엔 장애인들의 건강과 법률 및 인생고충을 상담하는 '사랑의 전화'도 개통했다.
그러던 중 한국장애인봉사협회는 500여 명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야유회를 열었다. 서 단장은 그들에게 뭔가 보여주려고 했지만 연예인을 섭외하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 밋밋한 야유회가 되고 말았다. 그는 장애인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연의 필요성을 느꼈고 지인들의 소개로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는 10여 명의 연예인과 함께 대구문화예술단을 출범시켰다. 지금은 단원 7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단원들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트로트, 발라드, 국악, 통기타 가수에서부터 벨리댄스, 한국무용, 각설이 타령 전문가, 색소폰 주자, 코미디언 등 다양하다.
"현재 외부 후원은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내고 있는 월 2만원의 회비와 임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경비를 조달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2시간가량 공연을 하려면 20여만원이 든다. 출연진들은 개런티도 받지 않는다. 경북지역 공연은 교통비가 더해져 공연비용만 한 달에 150만~200만원이 든다. 일단 공연 날짜가 잡히면 전체 무대 구성과 출연진 섭외 등 모든 준비과정은 서 단장의 몫이다. 10여 년이 넘는 공연 노하우가 쌓이면서 대구문화예술단은 특수조명, 포그머신 등 웬만한 방송국 연예 프로그램 못지않은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장비들의 화려한 쇼는 전부 서 단장의 잘 펴지지 않는 뭉툭한 손에서 빛을 발한다.
"두 시간 동안 공연을 지휘감독하고 나면 몸이 파김치가 되지만 공연을 보고 기뻐하는 이웃이나 어르신들의 미소를 볼 때면 다시 힘이 솟아요."
그의 옆에는 부인 김 씨가 언제나 함께한다. 공연 촬영도 부인의 몫이다. 서 단장은 공연이 끝나면 다음 날 침대에 모로 누운 채 컴퓨터 마우스를 간신히 조작해 전날 공연 동영상을 편집해 올린다. 또 그가 관리하고 있는 다음카페 회원들에게는 공지사항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건강 상식, 유머도 함께 올린다.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대구문화예술단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좋은 공연을 계속할 수 있도록 후원자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서 단장은 1998년 MBC 선정 좋은 한국인 대상, 1999년 사회봉사 부문 신지식인, 2005년 TBC선정 자랑스런 대경인상을 수상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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