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정서와 사유 구조를 천 년 동안 지배해 온 신유학(新儒學)을 집대성한 사람은 중국 남송시대의 주희(朱熹)다. 그래서 신유학을 주자학(朱子學)으로도 부른다. 동서고금의 모든 사상과 마찬가지로 주자학 또한 시대적인 산물이다. 유학의 형식적 문풍에 대한 반성과 허무적멸의 사상이 지배적이던 불교와 도교에 대한 비판이 그 발단이 되었다. 게다가 요(療), 금(金) 등 이민족 왕조에 잇따라 유린당했던 시대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자학의 등장은 당면한 정치 사회적 위기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일국가를 이루어 가야 할 현실적 요구에 대한 사상적 대응인 것이다. 16세기 조선의 퇴계 또한 당대의 불안정하고 위험한 정치 상황에 대한 고뇌의 결과로 퇴계학(退溪學)을 탄생시킨다. 퇴계의 시대는 사화(士禍)의 시대였다. 인의예지를 지향하는 유학의 이상이 짓밟히고 훈구척신의 부정한 권력과 타락한 욕망이 기승을 부리던 난세였다. 이기론(理氣論)으로 말하면 기(氣)가 이(理)를 압도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훈구척신이란 氣세력의 발호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도덕과 정의의 표상인 理의 깃발을 든 사림(士林)의 양성이 필요했고, 사림의 철학적 무장을 위한 이론적인 근거로 理의 적극적 능동성을 인정하는 이발설(理發說)을 역설한 것이다. 퇴계와 고봉이 8년에 걸쳐 사단칠정논변을 벌였던 것 또한 16세기 사화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 세상을 열어갈 해법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주자와 퇴계는 자신의 시대를 위기로 파악했으며 이를 사상 정립으로 이겨내고자 했다. 그것이 주자학이고 퇴계학이다. 나아가 퇴계는 주자학의 이념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면서도 당시 조선의 시대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실천적 무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경북 안동의 도산구곡(陶山九曲)을 중국 복건성 무이구곡(武夷九曲)과 비교 연구함으로써 한국 유학의 독자성을 밝혀 내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과 중국 복건성 송명리학연구중심 학자들이 4일부터 퇴계 사상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도산구곡 현장을 답사한다고 한다. 안동댐 수몰 이후 최초로 시행되는 이번 한중 학술 답사에서 그동안 문헌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한국 유학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기를 기대해 본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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