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득권 구도 뒤흔드는 SNS…'사회 지형' 뒤집는 도화선되나

FTA사태로 또 시민결집 위력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발 혁명의 기운이 대한민국에 몰아닥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현실'로 빚어지면서 정치'사회 지형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희망제작소 등 시민사회운동에 헌신해온 박원순 변호사는 어느 날 갑자기 정치 참여를 선언한 뒤 돌풍을 일으키며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격려하기 위해 6차례나 이어졌던 '희망버스'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고, 이런 관심들이 결국에는 한진 사태 해결과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됐다. SNS발 변화의 움직임은 지금껏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던 '기득권'에 중대한 도전을 던지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결집시켜 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버린 정치에 대한 분노

이달 22일 오후 4시. 트위터는 끓어오르는 용광로였다. 이날 오후 2시 한나라당이 FTA 강행처리를 시사하면서 서서히 들끓기 시작한 트위터 여론은 4시를 전후해 강행처리가 이뤄지는 순간 여기저기서 내뱉는 분노의 탄식으로 이글거렸다.

트위터리안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끝났다" "미친 정권, 미친 권력, 미친 역사. 그저 돈과 미국밖에 모르는 놈들"이라는 격앙된 목소리를 쏟아내며 한나라당의 FTA 강행 처리를 맹비난했다. 그리고 이날 성난 시민들은 SNS를 통해 명동에서의 길거리 시위를 독려했고 "명박퇴진 독재타도"를 외쳤다.

새들의 지저귐을 뜻하는 트위터(twitter). 이곳에서 사람들은 개인적 일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최근에 트위터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결집시키는 통로가 됐다. 지금껏 정치에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던 젊은이들이 SNS라는 새로운 수단을 통해 '정치지향적'이 된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뽑은 대표가 정작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남대 정외과 김태일 교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희열을 느끼게 되는데 SNS는 그 기술적 특성에 따라 과거 수동적인 소비자일 뿐이었던 개인 모두가 뉴스의 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며 "그 가운데서 SNS의 내용이 정치지향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기존의 '대의 기제'가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을 대표해서 뽑아놓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행태를 수없이 봐오면서 억눌렸던 분노가 SNS를 통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왜 젊은이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자세"라고 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의 표상인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은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감수성 짙은 매체인 손편지로, 이것은 굉장히 역설적인 공감의 힘을 자아냈다"며 "지금은 옛날처럼 설득'동원의 시대가 아니라 가슴에 와닿는 감성적 정치의 시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함을 기존 정치인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권위를 해체한다?

최근 우리나라 SNS에서 두드러진 특성은 기존의 권위에 대한 저항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뿐 아니라 언론에 대한 불신과 반감도 상당하다. 영남대 신문방송학과 주형일 교수는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불신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독재정권을 거치고 언론이 권력지향적 특성을 갖게 되면서 오랫동안 쌓여온 것으로 본래부터 존재해 오다가 SNS를 통해 분출된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기존의 언론들이 정치'경제 등 권력집단만을 좇을 뿐 대중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데 워낙 미흡하다 보니 기성언론과 대중들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에 부딪혀 제대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술집에서 떠들다 사라질 뿐이었던 서민들의 외침이 이제는 SNS를 통해 모아지고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희망버스 사태를 통해 트위터를 시작하게 됐다는 직장인 강일우(34) 씨는 "사실 한진 사태를 위시한 희망버스와 김진숙 등은 보수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단어"라며 "지금도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와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에 대한 이야기 역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SNS 속에서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며 이를 확산시키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주 교수는 "언론은 게이트키핑 기능을 통해 특정한 의도를 가진 정제된 이야기만 내놓는 반면에 SNS는 자연발생적인 마구잡이의 이야기들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라는 점에서 특성이 전혀 다르다"며 "그런 가운데 젊은층이 대다수를 이루는 사용자 분포상 기본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불만이나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SNS 속에서의 이야기들은 자연발생적이어서 조종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다. 주 교수는 "사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SNS를 통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진보진영조차도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다'고 할 정도"라며 "그 변화의 방향이 앞으로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전혀 그 누구도 예측 불가능"이라고 밝혔다.

매체환경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과연 기성언론과 SNS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주 교수는 "장기적으로 보면 SNS의 영향력은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고, 새로운 모델이 확산되면서 점차 확대될 것이고, 다양한 의견들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가능케 할 것이다"고 밝혔다. 누구나 의견을 내고 이것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확산될 수 있는 바람직한 형태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는 "이 속에서 기존 매체는 SNS의 감각적이고 쉽고 간단한 소통이라는 형식에 정반대되는 '고급스럽고 깊이 있고 체계적인' 전문지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살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감정보다는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하지만 일부에서는 너무 순간적이고 단편적이고 감정적으로만 흐르는 SNS의 속성상 조금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영남대 사회학과 허창덕 교수는 "지금의 SNS는 좋게 해석하면 '직접 참여 정치에 대한 강화'로 볼 수도 있지만, 나쁘게 보자면 정치적 의사나 감정 욕망들이 거름장치 없이 마구잡이로 표출되는 일종의 배설구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의 SNS는 그동안 억눌려 온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그야말로 용암이 들끓듯 분출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사실 한국의 실정이라는 것이 사회구성원들의 정서나 의사와는 관계없이 소수 기득권층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로 작동해 왔고, 여기에 대한 불만과 공분이 쌓인 것은 어쩔 수 없고 당연할 결과"라면서 "이제껏 억눌려 있던 화를 표출하는 단계가 지나고 나서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으면 그때야말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오리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 속에서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SNS의 신뢰성 문제다. 워낙 단편적인 글들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일마저도 무작위로 유포되면서 왜곡을 가져오게 되는 것. 당장 FTA 반대 집회가 열렸던 22일 밤에도 트위터에서는 '시위 중 1명 사망'이라는 유언비어가 급속히 퍼져 나가기도 했다. 한 트위터리안은 "사실 기성 언론도 믿지 못하는 판국에 트위터에 떠도는 말을 신뢰하기란 쉽지 않다"며 "기껏해야 30% 정도 신뢰할 수 있겠나"라고 답했다.

허 교수는 "이제 숙제는 다시 소수의 엘리트 정치냐, 다수의 정치냐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며 "SNS에서도 소수 오피니언 리더들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맹목적인 추종으로 흘러 기존 정치의 문제를 되풀이할지, 아니면 '영리한 군중'(smart mob)의 역할을 해내 합리적 사고를 할지는 SNS 사용자들의 숙제"라고 밝혔다.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정태 교수는 "지금 SNS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배신감이 너무 강해서 이대로 계속 가면 과거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든다"며 "지금은 특정 정치 스펙트럼에 편향된 경향이 강한 SNS가 앞으로는 의견의 균형을 좀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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