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찾아서] <49> 오늘이라는 하루

내가 사는 오늘은… 그들에겐 그토록 절실했던 날

그림자가 꽤 긴 것을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이겠죠. 하기야 뛰노는 아이들에게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요즘은 해질 무렵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그곳은 삭막하기 그지 없습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닭싸움, 땅따먹기, 숨바꼭질, 술래잡기를 하던 시절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습니다. 닭싸움을 하다 넘어진 아이도 웃고, 엉거주춤 서 있는 아이도 웃습니다. 아이는 그래야 합니다. 제 몸에 맞지도 않는 형의 교복을 걸쳐입은 꼬마는 형들의 모습이 마냥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매일신문이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을 개최한 지도 55년이 지났으니 지금 이 사진은 50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셈입니다. 사진=최욱렬(제3회 매일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특선), 글=김수용기자
그림자가 꽤 긴 것을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이겠죠. 하기야 뛰노는 아이들에게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요즘은 해질 무렵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그곳은 삭막하기 그지 없습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닭싸움, 땅따먹기, 숨바꼭질, 술래잡기를 하던 시절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습니다. 닭싸움을 하다 넘어진 아이도 웃고, 엉거주춤 서 있는 아이도 웃습니다. 아이는 그래야 합니다. 제 몸에 맞지도 않는 형의 교복을 걸쳐입은 꼬마는 형들의 모습이 마냥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매일신문이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을 개최한 지도 55년이 지났으니 지금 이 사진은 50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셈입니다. 사진=최욱렬(제3회 매일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특선), 글=김수용기자
행복는
행복는 '지금'(NOW)이다. 아무리 좋았던 시절이라도 당시에 느끼지 못한 행복은 훗날에는 좋은 추억일 뿐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그 순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열매도 그러할 것이다. 해가 아무리 밝게 떠 있어도 눈을 감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두운 밤과 같다. 또한 맑은 날에도 젖은 옷을 입고 있다면 기분도 비 오는 날과 같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의 눈을 뜨지 않고 그 마음의 의복을 갈아입지 않으면서 행복하길 바란다면 결코 잡을 수 없는 욕심일 뿐이다. 나는 지금(NOW)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글/일러스트 = 고민석 komindol@msnet.co.kr

세상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무엇보다 아프지 않고, 설령 아플지라도 금세 나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와 똑같이 걸어다니고, 웃고, 친구와 토닥거리던 사람이 어느 날 병실에 누워있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코에 줄을 꽂고 있는 상태로 우리와는 다른 사람,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은, 나는 그 세계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세상에 있는 사람이 돼 있습니다. 바로 내 곁에 있던 내 가족, 나의 엄마, 우리의 남편이, 지금은 화가 나지만 본인의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받아들이도록 끝없이 훈련받는' 난치병 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 바에야 품위 있게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누구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겪는 하루하루는 발병 전과는 너무나 다르지만, 오히려 더욱 소중하다고 손 교수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얼굴을 맞댈 수 있고, 그래서 함께 저녁노을을 볼 수도 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근육병을 앓는 A씨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엄마! 나 죽기 싫어! 나 죽기 싫어!"라고 외쳤습니다. 기관지절개술을 하고 억지로 공기를 불어넣는 수술 중에 그는 외쳤습니다. 어쩌면 의미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A씨에겐 그토록 절실했습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2011년 11월 00일

다행히 A는 고비를 넘겼다.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보호자들이 모두 몰려나와 울었고 엄마를 위로했다. A는 다시 살아났고 다음 주 퇴원을 앞두고 있다. 물론 호흡기를 뗐다거나 기관절개를 막게 된 건 아니다. 근육병은 좋아지는 병은 아니므로 환자들이 악화된 뒤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집에서 생활한다.

'내가 환자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나는 때때로 그런 생각을 감히 하곤 했다. 매일 그들을 돌보는 의사이면서도. 호흡기를 24시간 하고 있어야 하는 내 환자들, 소변도 대변도 누워서 봐야 하고, 앉아서 세상을 볼 수도 없는 내 환자들, 예전에는 위엄이 있는 선생님이었을지라도 지금은 입을 다물 힘조차 없어 침을 계속 흘려야 하는, 발가락이 가려운데 어디가 가려운지 말할 힘이 없어 그냥 참고 있는 내 환자들. 살아 있으면 뭐하나. 아무 것도 못하는 채로 하루하루 시간만 메우면 뭐하나.

하지만 나는 지금도 죽기 싫다고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짜내던 A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건 사치였구나. 그들이 바라는 건 딴 게 아니었다. 그저 '살아 있는 것', 그저 살아서 하루하루 눈을 뜨고 엄마의, 아내의, 아들의 얼굴을 보고 숨을 쉬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저 인간으로서 하루를 살아있는 것.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 삶에 대해 많은 부분을 불평하면서 살아간다. '왜 아내는 날 이렇게 이해하지 못 하나', '나는 왜 좋은 직장에 들어오지 못 했을까', '나는 왜 이 정도로 밖에 못 생겼을까' 등등.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저 오늘 하루 살아있는 것이 바람의 전부인 사람도 있다.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고, 착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지금 호흡기로 숨을 쉬며 누운 채로 내게 웃음을 보여 주고, 살아나게 해줘서 기쁘다고 한다.

요즘 회진을 돌면서 환자들에게 하는 말이 달라졌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가 아니라 "오늘은 뭐 재미있는 거 하면서 보낼 거예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섭섭했던 사람에게 그때는 섭섭했다고 말하고, 오늘은 웃어 주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영화를 보고, 봄 햇살을 느껴 보는 것. 훗날 죽기 전에 돌이켜봤을 때 못해봐서 속상할 일들은 그들에겐 아직도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 지금 속상해서, 힘들어서, 비참해서 죽고 싶다는 건 사치다.

오늘 하루, 세상이 내게 주는 선물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소중한 기억으로 채울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창문 너머 빠져나온 쌀쌀한 바람이 내 머리칼을 스친다. 너무 사랑스러운 오늘이다. 참, 감사 하구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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