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연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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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보러 갔더니,

하루 종일 도회지 사람들이

연못에 와서 연탄을 주문하고 가는 듯하다

날이 갑자기 살살해지자

우리 집도 무쇠 솥 떼내고 연탄 들여왔다

생솔가지 타는 냄새 더 이상 맡을 수 없는 대신

연탄구멍에서 연꽃향기 파렁 파렁 올라왔다

내가 처음 연꽃 향기를 맡은 건 다섯 살 때였다

그때는 너무 어려 뜸을 잘 들여야 밥이 맛 나는 줄

연꽃 향기 많이 맡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몰랐다

물안개 고운 날, 나도

발목 파란 사람들 따라 또 다른 세상 가보자 했는지도 모른다

동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엄마는 울먹거리고

시래깃국이 맛날 계절, 가마솥밥보다

연밥이 가장 구수하게 익는 걸

숟가락질 제대로 할 때쯤 알았다

이가영

섬세한 감각의 비유를 보여주는 이가영 시인의 작품입니다. 비유를 풀어가면서 읽는 재미가 있는 시라서, 처음부터 궁금해지네요. 연꽃 구경 와서 도시 사람들이 연탄을 주문하고 가다니요.

아하, 시인은 지금 연밥을 연탄으로 보고 있군요. 그러니 연꽃 향기 많이 맡으면 죽는다는 말도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다섯 살 때 그 치명적 향기 때문에 비몽사몽간에 헤매고 있어서 엄마가 울먹거린 것이고요.

연탄이건 꽃이건 사람이건, 치명적 향기는 사람을 철들게 하지요. 그래서 제 집안의 가마솥밥만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저 연못가 연밥도 구수하게 익어간다는 것 알게 되지요. 향기가 서로 드나들듯이 두 세계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지요.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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