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푸틴

러시아가 오늘날의 대국으로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황제 이반 4세 때부터이다. 1547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모스크바 공국의 대공으로 즉위한 이반 4세는 '보야르'라 불리는 대귀족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지위가 불안했다. 많은 사람이 이반 4세가 얼마 가지 않아 폐위되거나 암살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는 대귀족들과의 힘겨루기에서 승리,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인근 국가들을 병합,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다.

'차르'를 정식 칭호로 사용한 그는 집권 전반기에 뛰어난 치세를 보였지만 후반기에는 광기에 사로잡혀 잔혹한 학살과 탄압을 일삼았다. 검은 옷을 입은 '흑위병'을 창설, 반대자들을 살육하는가 하면 '군주가 잘못해도 신하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그로즈니'(공포, 잔혹), '뇌제'(雷帝)라는 별명을 얻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차르 체제가 무너졌지만 이후 공산 체제의 지도자들도 '차르'형 독재자들이었다. 특히 '공포 정치'의 대명사였던 스탈린은 이반 4세를 존경, 그의 통치 방식을 시대에 맞춰 변용했다. 반대자들을 서슴없이 숙청, 살해하고 일반 국민도 감시의 대상으로 삼아 체제에 반하는 잘못이 드러날 경우 강제수용소로 이주시키는 등 서슴없이 탄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승리, 3선에 성공했다. 푸틴은 8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한 후 3선 연임 제한 규정에 묶여 2인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웠다가 다시 최고 권력에 복귀하게 된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려 푸틴이 다시 연임할 경우 그는 실질적 1인자였던 지난 4년까지 포함, 24년간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의 대통령직 당선을 두고 '차르의 귀환'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경제 성장을 이뤘으나 정적을 억누르는 등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끊이지 않았고 총선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반대 시위도 잇따랐으나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에 의해 다시 선택받았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그의 장기 집권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이 많아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다. '21세기 차르'의 러시아가 어떻게 나아갈지 우리나라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상황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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