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어린 왕자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기

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사진을 찍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레임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시야에 들어온 장면들 중에서 찍고 싶은 영역을 선택하는 것이 사진의 프레임을 설정하는 일이다. 어떻게 프레임을 잡느냐에 따라서 사진의 전체적 느낌이 달라지듯이, 바로 이 프레임에 의해 경계가 생겨난다. 시각의 경계가 생겨남은 물론 의미의 경계가 만들어진다. 안과 밖의 구분이 생겨나고 생각의 테두리가 결정된다. 프레임은 비단 사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 심리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프레임이란 단어는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틀'을 의미한다. 프레임은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생각과 판단의 근거를 마련해 준다. 즉, 프레임은 사람에게 어떤 특정한 시각이나 생각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고정관념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프레임에 의해 생성된다. 프레임을 바꾸면 사진의 느낌이 달라지듯 우리가 생각의 프레임을 바꾼다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할지 모를 일이다.

'어린왕자'를 보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판단 프레임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나온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특히 숫자를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즉, 새로 사귄 친구의 목소리는 어떨지? 그 애가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인지? 나비를 수집하는지? 라는 질문 대신에 그 친구의 나이가 몇이고, 형제가 몇 명이며, 체중은 얼마가 나가고, 아버지 수입이 얼마인지를 먼저 묻는다고 어린왕자는 의아해한다. 어른들은 그러한 숫자들로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숫자를 유효한 판단의 근거로 활용해왔다. 경제의 상황을 판단하는 각종 지표들은 물론, 신체를 측정하는 단위, 토익시험 점수에 이르기까지 숫자는 어느덧 사람과 일상을 대변해주고 있다. 나이가 사람을 말하고,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이 그 사람의 지위를 상징하고, IQ, EQ, NQ 등 사람을 평가하는 새로운 방법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숫자가 정의해주는 편리함에 더욱더 의존하게 된다. 숫자가 제공해주는 객관적인 데이터는 물론 의미 있고 중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숫자로 치환할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만큼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험과 도전보다는 숫자에 근거한 안정적인 판단을 선호한다. 하지만 숫자는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모든 것을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오티스가 브레이크가 달린 엘리베이터를 개발했던 것은 1853년이다. 그 이후 엘리베이터 기술은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속도의 개선은 쉽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과 기술이 필요했고, 또한 무엇보다도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사용자들이 느끼는 속도의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점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 직원이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부착하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붙이고 나니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 일이 생겨났다. 거울을 쳐다보느라 속도의 문제를 잊게 된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만 생각한다면 시간이 유난히 더 길게 느껴졌던 심리적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속도라는 숫자에서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았다면, 이렇게 쉽고 멋진 결과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실제 시간보다 사람들의 심리에서 속도라는 문제를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리적 시간에서 심리적 시간으로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것- 이것이 생각의 힘일 것이다.

'창문에는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분홍색 벽돌집'을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란다. 숫자에 근거해서 이 집이 몇 평이고, 가격이 얼마짜리라는 생각 대신, 위와 같은 집을 상상해 보라고 어린 왕자는 얘기한다.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지 않는다면, 문제의 본질 대신에 숫자가 주는 편리함을 택한다면, 창조적 생각은 쉽게 발휘되지 않을 것이다. 어린 왕자 같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프레임과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어린 왕자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매일 똑같은 대상 속에서도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 알베로니가 말했던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임헌우/계명대 교수 시각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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