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구청 광역행정 혼선…구의회는 국회의원 손발노릇"

지방행정 개편 '광역시 자치구 폐지안' 왜 나왔나

대통령 직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가 서울을 제외한 6대 광역시의 민선 구청장과 구의회를 폐지하는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의결했다. 추진위는 그 이유로 ▷광역시 단위의 종합행정계획이 자치구와 군 등의 반발로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구의회 무용론에 대한 주민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실제 대구시와 자치구 간 권한, 도시계획, 인사, 현안 사업을 두고 곳곳에서 혼선이 빚어진다. 또 국회의원의 손발로 전락한 구의회에 대한 무용론도 일찌감치 제기됐었다.

◆대구시와 구청 간 혼선=대구시와 구청 간 사업을 두고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경우가 적잖다. 시는 한정된 예산의 효율적 사용에 무게를 두지만 구청은 해당 구의 사업이 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호강 생태하천 조성 사업구간의 대구 동구 안심습지를 두고 시와 동구청이 맞서고 있다. 동구청은 안심습지를 청소년 생태 학습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며 대구시에 입구 포장, 관찰 데크 설치, 방문 센터 건립 비용 등100억원의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생태 원형 보전이 우선이라며 인위적인 교육 및 편의시설 설치를 꺼리는 실정.

앞산공원 고산골 산책로 메타세쿼이아 숲길 조성을 두고는 시와 남구청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남구청은 산책로 입구 275m 구간에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420m 연장할 계획이지만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사업비를 두고 시와 남구청 간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 남구청은 토지 보상비(약 7억원)를 포함해 15억원을 요구하지만 시는 "보통 공원 개발에 3억~5억원만 배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권한과 업무 영역의 경계선이 모호한 경우도 적잖다.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인 신천은 시와 구청, 대구시설관리공단이 함께 관리한다. 수량 유지와 보 관리 등은 시가 직접하고, 둔치의 잔디 보호와 체육시설 관리는 시설관리공단이 책임지고 있다. 반면 신천 둔치 진입로는 구청 관할이다. 이처럼 업무 영역이 모호한 탓에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기가 쉽지 않다. 시민 김모(42) 씨는 "신천 둔치에 개를 끌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 구청에 얘기해도 관할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며 "기관 간 영역이 너무 모호하다"고 말했다.

◆인사권 두고도 갈등=인사권을 두고도 갈등이 빚어진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 대구시는 모 국장을 한 구청의 부구청장으로 임명하려고 했지만 해당 청장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진통을 겪었다. 시는 적체된 인사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조치였지만 구청장은 해당 국장의 출신 고교를 들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위직 인사 정책도 마찬가지다. 과거 시와 구청 간 인사 교류가 적지 않았지만 민선 구청장이 나타나면서 교류는 사실상 단절된 것. 시청과 구청 간 교류는 없다. 구청 자체 인사도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다. 선거 때 도움을 준 직원들을 우선 승진을 시키거나, 승진 대상이 되면서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지역 관계에서는 기초단체의 공무원 승진을 두고 '3서 2사'(대구), '7서 5사'(경북)라는 말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대구의 경우 서기관 3천만원, 사무관 2천만원, 경북 서기관 7천만원, 사무관 5천만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북대 윤순갑 교수(정치외교학과)는 "광역시 전체를 보며 장기적인 발전을 세우는 것과 구청장이 해당 구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려는 관점이 상반될 때가 있다"며 "시장과 구청장 간 발전 전략이 어긋났을 때 해결이 쉽지 않고 낭비적인 요인이 많다. 시장을 직선으로 뽑고, 구청장을 관선(광역단체장이 임명)으로 임명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구의회 무용론=구의회 무용론이 나온 배경은 구의원들이 해당 구청 간부를 폭행하고, 동료 의원끼리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해외 연수를 다녀온 뒤 부실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자질과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주민보다는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 눈치를 보면서 구청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한 탓이다.

2010년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여야 합의로 구의회 폐지를 결정한 것도 이 같은 여론이 팽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역시 국회의원들이 구의회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구의회를 폐지하고 광역의원 수를 늘리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국회원들은 자신들의 손발을 자르는 데 동의하지 않고 있다. 시의원보다 구의원이 특히 국회의원들의 조직 관리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지대 배찬복 교수(정치학)는 "기초의회가 개인사업 편의와 이권 개입, 인사 청탁, 뇌물 수수, 심지어는 구청 단위에서 모범 주민들에게 주는 각종 상훈마저 개입해 왜곡시키고 구청장에게 압력을 넣는 등 갖은 비리로 점철된 부분이 있다"며 "이런 문제로 인해 주민 불만이 누적돼 기초의회 무용론 또는 구의회 폐지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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