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마틴 자크/부키

강대국 중국의 등장으로 바뀌게 될 세계를 상상하라

붉은 수수밭을 배경으로 한때는 양조장 머슴이었던 주인공과 마을 사람들이 침략자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붉은 수수밭'은 오래전에 본 영화인데도 기억에 선명하다. 사회주의국가 중국이 아직 비밀에 싸여있던 무렵 세계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 영화에서 장이모 감독은 중국인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넘치는 힘과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을 읽었다. 저자는 서구인이면서 중국문제 전문가로, 머지않아 중국이 강대국이 될 것이며 세계 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으며, 서구사회가 근대를 독점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본다. 중국은 새로운 세계를 움직이는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며, 인구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중국의 등장이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럼에도 서구 국가들은 아직 중국의 부상에 대해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서구의 근대화 패러다임을 따를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의 부상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중국의 경제성장뿐 아니라 역사, 정치, 문화, 전통까지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은 수천 년에 걸쳐 존재해 온 국가로, 국민국가이면서도 오랜 문명과 광대한 대륙을 가지고 있어,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과 차원이 다르다. 중국인들은 중국 문명이 전설상의 제왕인 황제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본토에 살건 본토 바깥에 살건 자신들을 황제의 후손으로 생각한다.

실제로는 다민족 국가이면서도 자신들을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단일한 민족으로 생각하는 중국은 근대에 들어와 침략과 단절, 굴욕을 경험했지만 문명을 지속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혼란과 단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 중국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중국 역사의 위대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으며, 중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위대한 역사의 일부분이 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중국이 부상해 세계 최고 국가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그들에게 역사적 필연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이제 자석은 중국에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자석이 중국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길이 중국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 질서는 새롭게 개편되고 있다. 이 지역의 주요 안건은 베이징에서 만들어진다. 중국의 부상을 계기로 세계는 새로운 역사 시대로 접어들지도 모른다.

중국이 바꾸게 될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중국 역사는 중국인이나, 동아시아인들뿐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것이 될 것이다. 과거 중국인들이 만든 발명품들은 다른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가장 창의적인 문화를 형성한 이들은 유럽 사람들이라는 이 시대의 믿음을 한꺼번에 일소시킬 것이다.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되며, 베이징이 세계의 수도가 될 것이다. 황인종이 세계를 지배하면 백인이 지배해왔던 세계 역사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중국과 주변 국가들과의 국력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근대 이전 중국이 오랫동안 주변국들과 관계를 맺어왔던 것처럼 중국식 조공제도가 부활할 수도 있다.

저자는 5천 년 역사를 간직한 중국은 연장된 시간 척도를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에 시간은 자기편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치밀하고 꼼꼼하게 서술해나가는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인다.

책을 읽는 내내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우리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중국과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며, 전쟁과 침략으로 얼룩졌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근대를 평화와 화해의 시대로 열어나가기 위한 인식전환과 준비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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