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大君不敗

국왕의 형제였던 왕조시대의 대군(大君)들은 평화로운 시절에는 귀한 신분에 걸맞은 유복한 삶을 누렸지만, 권력이 부침하는 불운한 시대를 만나면 자칫 정변에 휘말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도 했다.

조선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은 동생인 충녕대군(세종)에게 권좌를 양보하고서도 유유자적한 생을 영위한 대군이었다. 왕위조차 미련 없이 양보할 수 있는 양녕대군의 도량이 있었기에 세종의 치세가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양녕대군은 정치나 권력의 주변을 훌쩍 떠나 시문을 즐기는 풍류객으로 자유분방한 일생을 보냈다. 권좌를 거머쥐기 위해 골육상쟁을 일으킨 아버지 태종의 아픈 가족사에서 일찌감치 권세와 인생의 무상함을 체득한 것일까.

왕조시대도 아닌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군'들이 권력형 탁류에 잇따라 휩쓸려 형제인 대통령과 집안은 물론 나라 망신까지 시키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도 불과 수년 전 다른 권력자 형제들의 망신살을 뻔히 보고서도 똑같은 낭패를 되풀이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최근 '영일대군'이 '봉하대군'의 전철을 밟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봉하대군) 씨가 검찰에 소환된 지 4년도 안 되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영일대군) 전 의원이 검찰에 불려갔다.

한 사람은 소박한 농부였고, 한 사람은 기업가 출신의 6선 의원이지만,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인 동생의 집권 기간 동안 '대군'으로 행세했고, 각종 비리에 얽혀 유사한 추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대군'이 위세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5공 전두환 정권 때였다. 정권이 바뀌자 대통령의 형과 동생 모두 부정과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특히 동생 전경환 씨는 5공 비리의 대명사로 악명이 높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생은 형의 재임 기간에는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나중에 형제 간의 재산 분쟁을 일으켜 세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더 먹는다고 밥술깨나 먹는 집안 사람들이 더 욕심을 부리니 서민들은 할 말을 잃는다. 돈과 권력을 탐닉하다가 기어이 제 몸을 태우고 마는 불나방의 말로를 수없이 지켜보았으면서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 탓인가, 인간의 모자람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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