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경부고속도로와 박정희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가
  • 가

1964년 12월, 당시 서독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아우토반(Autoban)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서독의 젖줄이 바로 고속도로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그는 귀국 직후부터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구상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류망을 우선 구축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전문가들을 수시로 청와대로 불러 손수 작성한 고속도로 설계도를 보여주며 연구에 몰두했다.

1967년 4월에는 대선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들고 나왔다. 생소한 그의 공약에 대해 야당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민이 반대하고 나섰다. '부유층만을 위한 도로', '국가재정을 파탄 내는 사업'이란 것이 주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한 박 대통령은 한일 기본조약에서 얻은 차관과 베트남 파병 대가로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밀어붙였다. 당시로선 엄청난 429억원의 예산에 연인원 892만 명과 165만 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 사업은 대구~대전 구간 공사를 끝으로 2년 5개월 만에 완공돼 1970년 오늘 대구공설운동장에서 완공식이 열렸다.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5일 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방문하고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역사 왜곡 논란을 비판하며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시작되면서 차량의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자주 켜지고 있으며,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외부 기온이 10도...
경북 농촌에서는 고령 농민 비율이 59.2%에 달하고, 농지 소유자 직접 경작 원칙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고령 농...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