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잠들지 못하는 영혼

남도여행서 만난 바다, 꿈에서 본 듯한 낯익은 풍경

양복 분실에 대한 기억은 몇십 년째 나를 따라다니고 있지만 요즘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희미한 추억의 한 자락으로 변해 가고 있다. 낮 시간에는 "그건 네 의식이 꾸며낸 착각이야" 하고 안쓰러움이 묻어 있는 손길로 나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꿈속에서는 아직도 잃어버린 양복을 찾아 세탁소마다 기웃거리고 다니는 걸 보면 내가 맛이 좀 가긴 간 모양이다.

기시감(旣視感)이란 말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기억의 오류다.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과거 어느 때에 체험한 것 같으나 그것이 언제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의식을 말한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경험했거나 본 것처럼 느껴지는 기억의 오작동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의 회로 하나가 혈관의 피가 안 통하듯 소통 상태가 좋지 않아 '기억 경색'을 일으켰음이 분명하다.

'황금 양복 분실사건'은 나의 기억을 고아로 만든 시간의 허방이다. 나는 지난 삼사십 년 동안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꿈속에서 그 양복이 있을 만한 세탁소를 찾아 계속 헤매고 다녔다. 앞으로 얼마나 더 허방을 딛고 다녀야만 오랜 방황의 세월이 끝날지 모르겠다.

기억의 종류에는 서술기억, 절차기억, 정서기억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서술기억은 과거에 경험했던 일이나 보고 배웠던 것들이다. 열심히 노력했던 공부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아쉽게도 영구보존이 잘 안 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이 기억은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환에 쉽게 공격당하는 뇌 부위에 저장된다. 따라서 자칫하면 클릭 한 번 잘못으로 모든 것이 삭제되듯 언제든지 사라질 위험에 직면해 있다.

절차기억은 수영이나 자전거타기처럼 그것이 습관화되어 뇌와 근육에 박히게 된다. 이 기억은 훨씬 오래 살아남는다. 이것들은 뇌의 기저핵과 운동을 담당하는 소뇌에 심어지기 때문에 생각 속의 기억들은 잊어버려도 기본적인 몸동작은 자연스럽게 재현된다.

정서기억은 너무 질겨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이 기억은 두려움과 분노는 물론 포근함과 따스함까지 포용하고 있다. 정서기억은 뇌의 가장 깊은 곳, 뇌질환에도 타격받지 않는 편도체라는 곳에 보관된다. 이 때문에 외부의 충격에도 강하다. 이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뇌 피질 곳곳에 분산 보관되기 때문에 이미 잊힌 기억까지도 되돌림이란 키 하나만 눌러도 재결합이 가능하다.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정과 용서받지 못할 자의 용서할 수 없는 분노는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지워지지 않는다. 성경에도 "용서하라, 용서하라"고 다그치고 있지만 용서하기가 어찌 그리 쉬운 일인가. 이런 것들이 정서기억에 속한다. 나의 양복에 대한 기억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잊히지 않는 걸 보면 정서기억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기억은 전부 추억할 수는 없지만 추억은 모두 기억할 수 있다. 그래서 기억은 '명사'적 성분이 강하고 추억은 '동사'적 맛을 낸다. 기억은 단순하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뜻하지만 추억은 '그 속에서 놀던 때'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다분히 행위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의 행로'라는 영화에서 보듯 기억을 상실한 남편이 과거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진한 추억이랄 수 있는 옛 살던 집의 열쇠 하나로 기억을 회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도여행을 떠났다가 전라도 강진에서 마량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가막만 바닷가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때다. 이곳은 가막섬에서 만호섬을 지나 서중마을로 이어지는 '바다가 보이는 풍경 길'이었다. 이 바다 역시 꿈에서 만난 듯한 너무나 낯익은 풍경이어서 깜짝 놀랐다. 바다 풍경은 마침 흐린 날이어서 수묵으로 대충 그린 스케치 작품과 비슷했다. 왜 내 영혼은 노쇠하지도 않고 잠들지도 못하고 이런 기시감에 계속 시달려야 하는가.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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