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맛있게 먹기] 카타르시스

특정 형식에 관계없이 공연 자체에만 몰입하다보면 맞이하게 돼

'연극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매우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 공부를 위해서 등 답변의 종류는 사람 숫자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답변 속에 숨어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재미'라는 것이다.

재미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내고 시간을 내서 연극을 보러간다. 그리고 관람한 연극이 기대한 재미에 미치지 못할 때 흔히 돈이 아깝다거나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웃음, 눈물, 놀라움, 깊은 성찰 등 그야말로 다양하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재미의 기준이 다르고 재미에 대한 만족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연극이든 관계없이 그 작품 안에는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관객의 성향에 따라 추구하는 재미가 다르긴 하겠지만 자신이 생각한 그 무엇인가를 연극에서 본 후에 어느 순간 개운해지거나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낀다면 연극에서 확실히 재미를 챙긴 셈이다. 그러한 재미들 중에 하나가 바로 '카타르시스'인데 보통 그 순간은 연극이 끝날 때쯤 오게 된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말은 '정화'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katharsis'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이 말에는 배설이란 뜻이 있으므로 감정의 배설, 즉 감정의 정화로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맛본다는 것은 감정의 정화를 이루었다는 뜻인데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에 잘 나와 있다.

시학에 따르면 카타르시스는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켜서 유사한 감정을 정화시키는 비극의 목적이자 목표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이 비극의 주인공과 자신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생각하는 동일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 관객은 비극의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 싼 연극의 결말이 드러나는 지점에 다다르면 관객은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배설 욕구를 참으며 견디다가 볼 일을 보고나면 차마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의 시원함을 느끼듯이 인간은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도 그와 비슷한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답답하고 우울하고 슬플 때 억지로 웃으려는 노력보다 시원하게 한 번 울고 나면 개운해지는 그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나 정서, 혹은 그러한 현상 등을 가리켜 카타르시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연극을 보면서 기대하는 것은 자신에게 찾아올 카타르시스이다. 스스로 인식하든 하지 못했든 사람들은 모두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는다. 그래서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맛본 날의 관극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그 순간이 찾아오거나 함께한 관객 모두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재미의 기준이 다르듯이 카타르시스의 기준도 다르다. 또한 주인공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어 연민과 공포를 느낄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에서 카타르시스가 발생하는 시점은 희곡과 실제 공연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는 단지 관객의 취향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가 쓴 희곡의 구조나 인물설정부터 연출가의 의도와 배우의 연기에 이르기까지 연극제작진의 다양한 손길을 거치면서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며 미리 계산해 준비한 것이다.

그러므로 관객 입장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연극의 특정 형식에 관계없이 오직 공연 자체에만 몰입해서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연극을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를 드디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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