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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묵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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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혁명기인 17세기 영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수평파(Levellers)는 소외된 중'하층 계급의 정치적 견해와 권익을 대변해 '현대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정치집단이다. 이 수평파의 중심인물인 존 릴번이 1639년 '금서 운반'과 '반정부 선동'의 죄명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서 자백을 강요받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심문에는 답하지 않겠다며 진술을 거부했다. 결국 릴번은 법정모독죄로 태형(笞刑)을 선고받았다.

태형 집행을 보기 위해 런던탑 광장에 몰려든 시민들은 법정의 야만적인 처사에 분노했다. "권리" "침묵"을 외치며 릴번을 옹호했다. 이후 릴번은 법정에서 위증을 강요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 제정을 의회에 호소했다. 1641년 영국 의회는 릴번에 대한 판결이 위법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영미법의 '자기부죄거부'(自己負罪拒否)의 원칙이 만들어졌다. '릴번의 태형 사건'으로 불리는 이 역사적 재판은 현대 형사재판에서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인 묵비권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미국 영화 등에서 'I'll take the fifth'라는 대사가 종종 등장한다. 'I'll take the Fifth Amendment'가 완전한 문장이다. 다섯 번째는 바로 미국 수정 헌법 제5조로 '누구든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진술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수정 헌법 5조에 명시된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다.

우리 헌법도 형사책임에 관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 권리(12조 2항)를 부여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도 형사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조사나 공판 과정의 신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묵비권 행사로 인해 법적 제재를 받거나 양형상 불이익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4'11 총선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당시 여론조사 조작 의혹으로 소환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가 어저께 5시간 동안 계속된 검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직업이 변호사이니 헌법에 보장된 이 기본권을 잘 알았을 것이고 검찰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불리한 추정을 받을 근거도 없다.

하지만 그의 묵비권 행사에 공감하고 동정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자기 권리에만 충실하고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서는 발뺌부터 하는 정치인들에 대해 국민이 질색한 지 오래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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