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연극저항 집단입니다."
창단 공연을 앞둔 학교 후배들과 조우하는 자리에서 대표를 맡은 후배가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얘기했다. '저항?' 순간 떠오르는 의문을 접고 오랜만에 듣는 이 '저항'이란 단어를 음미하기로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아니, 이런 단어가 있었는지 가물거릴 정도였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연극판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의 입에서 나온 '저항'이란 단어와 눈빛으로 보여지는 열정이 '순응'이란 단어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설레게 했다.
"연극을 배우고 싶습니다." 불현듯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삶의 목표도 없이 돈은 벌어야 하기에, 남들이 그러하기에 당연하게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거기서 나의 미래를 봤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속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가치를 잃어버린 나의 모습에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깨기도 했다. 반복되는 직장생활 속에서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특히, 연극이 좋았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몸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스물아홉의 나이에 한 극단의 단원모집 광고를 보게 됐다. 그것이 내가 연극을 시작한 계기였다.
"시립극단을 나오셨다기에 박수를 쳤습니다."
한 후배의 발칙한 발언에 할 말을 잊었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20대의 거침없는 직설이 가슴을 찔렀다. 순간 '시립극단에서 20년을 보내면 연금까지 나오는데 왜 나왔노?'라던 어느 선배의 모습과 앞의 후배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 선배의 얘기 때도 난 할 말을 잊었었다.
'서른을 넘긴 사람을 믿지 마라.'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비교적 많이 늦게 독립하는 우리나라의 셈법으로 한다면 아마 서른다섯을 넘긴 사람이라고 해야 맞을 거다. 상상력이 결여되기 시작하고 열정이 식어가면서 기성에 편입해 순응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후배들과의 만남 이후 한때 대구 문화의 다양성을 고민하고 아직은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았던 문화 게릴라들과 활동하면서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공연문화 도시는 거창한 구호나 지원, 공연의 횟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도권에 편입된 기성의 숫자만큼 기성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가진 신진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성이 확보되고, 그 다양함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성은 이미 만들어진 문화를 양산할 뿐이지만 신진들은 파괴와 복제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양산한다.
싸이가 대표적이지 않은가? 하위라 여겨졌던 인물이 기성과 상위에 대한 저항과 조소를 담은 이미지로 상위를 잡아버렸다. 주위에 발칙한 후배들이 있다면 그들의 날개를 꺾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표현이 기성에 대한 저항이라 할지라도 열정이 보인다면 다름으로 인정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김은환< '굿 프랜즈 아츠 그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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