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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책들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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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에게는 얼마만큼의 책이 필요할까? 금속활자 이전에는 3천 권 정도 소유하면 책 부자였고, 오늘날 장서가협회에서는 대략 1만 권 이상을 소장하면 장서가라고 칭한다. 나에겐 두 경우 모두 해당 사항이 없지만 나만의 보물 같은 서가를 바라볼 때면 마음만큼은 '부자'가 된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책을 잘 보관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숙제인 것 같다. 지인 중에 책 사랑이 유별난 이가 있는데 그이는 갖고자 하는 책이 있으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거나 여행길에서도 서점에 들러 책 사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이자 행복으로 여긴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가 마치 전리품을 보여주듯 트렁크 속 책들을 쏟아내면 보는 이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런 그이가 언젠가 이사 갈 집을 리뉴얼해서 두 칸의 방을 연결해 서재를 만들어 아주 멋진 서가를 장만했다. 이사 날을 전후해 회사일이 바빴던 그이는 어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잘 정리해두고 가니 맘 놓고 회사일 보거라"는 어머니의 반갑고도 감사한 메시지를 받고 퇴근 후 한달음에 집으로 왔는데 눈앞에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의 애장 목록 중 하나인 빛바랜 문고판들-전 시리즈를 맞추느라 엄청 고생한-이 노끈으로 꽁꽁 묶여 어머니에 의해 헌 책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몇 권의 책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청테이프가 지나간 흔적이 뚜렷했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때로는 정리대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허무하더라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그이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별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내 방보다도 내 책꽂이를 먼저 갖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나무 책꽂이를 손수 만들어주셨던 것이다. 달달 외울 만큼 즐겨 읽던 동화책들도 꽂고, 기차 모양 연필깎이와 내 분신인 인형들도 올려두었던 나만의 책꽂이는 중학생이 되던 해 창고행이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의 공부방 한 벽면에 키 큰 책꽂이를 놓아주셨다. 그 책꽂이는 네 명의 형제가 함께 사용했기에 우리는 나이 순서에 맞추어 구획을 정했다. 그 일련의 질서 속에 나는 아래쪽 몇 칸만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내 책꽂이는 늘 빽빽해서 책들을 숨 막히게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바라보는 지금 내 눈앞의 서가는 너무나 큼에도 늘 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이 있다. 문득, 책 관리 지침서에서 보았던 경고가 생각난다. '검지와 가운뎃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책의 양옆을 잡은 다음 양쪽 옆에 있는 책들을 밀치지 않고 빼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책들이 너무 빽빽하게 꽂혀 있는 것이다.'

나윤희<출판편집디자인회사 홍익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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