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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들 모두 분권 언급… '분권형 개헌' 천명 실천의지 보여야

한국지방신문협·분권개헌국민행동 긴급 좌담회

지방분권운동 진영은 분권이 보다 실질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헌법에 지방분권을 명기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월 대구광역시 지방분권협의회 창립총회 모습. 매일신문DB
지방분권운동 진영은 분권이 보다 실질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헌법에 지방분권을 명기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월 대구광역시 지방분권협의회 창립총회 모습. 매일신문DB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각계의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대선에 반영, 차기 정부에서 이를 중점 과제로 처리했으면 하는 희망에서다. 그동안 특별법까지 만들어 시행해봤지만, 분권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것은 이를 강제할 수단이 마땅찮았기 때문. 이에 따라 지방분권운동 진영은 헌법에 지방분권을 명기하는 것만이 강력한 지방분권을 실현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판단해 각 대선후보 진영에 정책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지방신문협회와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은 긴급 좌담회를 마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았다.

일시=12월 11일 오후 4시

장소=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사회=매일신문 최정암 편집부국장

토론자=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안동규 한국분권아카데미 대표, 이국운 한동대 교수, 안성호 한국지방자치학회 학회장

▶각 대선후보 캠프에서 간헐적으로 지역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지방분권정책이 강조되고 있지 않다. 대선후보들의 지방분권 추진의지를 어떻게 보나.

▷이기우 원장=매우 부족하다. 준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언급한 후보가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발언의 진정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그나마 각 후보가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배제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어서 실현될 경우 정당에 의한 지방의 중앙정치 예속화는 어느 정도 완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각 후보의 지방분권 의지는 전체적으로 낮다고 본다.

▷안동규 대표=분권형 개헌 등 강한 의지를 담은 내용이 없다. 다행인 것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에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다. 지역에 대한 인센티브와 지역발전에 대한 퍼주기식 공약 때문에 분권과제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가장 의미 있게 짚을 부분은 역시 분권 개헌이라고 본다.

▶지방분권이 지방자치를 발전시키고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선후보 캠프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안성호 회장=전체 행정사무 중 80%가 국가사무이며,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79 대 21에 불과하다.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1992년 69.6%에서 2011년 51.9%로 17.7%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런 중앙집권 체제에서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장점이 살아날 수 없다. 지금 한국은 대의정치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해법은 강도 높은 지방분권을 통해 분권'참여형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국운 교수=지역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지방분권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지역 간 경제적, 문화적 불균형이 심각하다면 그것을 조정해 대한민국 어디서나 최소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지방분권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는 것은 그만큼 지방분권으로 내세울 정책이 빈곤하다는 얘기다.

▶최근 지방분권운동단체들이 사회발전과 국정운영 원리로 지방분권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복지, 일자리, 통일 등의 분야에서 변화를 촉발하려면 지방분권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우=한국 정치개혁의 핵심은 지방분권에 있다. 중앙정부는 과부하로 기능 마비 상태에 있으므로 그 권한을 이양하면 국민 일상생활의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을 회복할 수 있다. 지방정부는 재정과 권한 부족으로 빈혈증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중앙정부가 권한과 재원을 넘겨주면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안동규=지방분권적 관점이란 작게는 Bottom-Up (상향식 의사결정)으로 권력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권력은 국민에서 나오는 것이 본질이므로 분권적 사고는 매우 자연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이다. 정치권력이 중앙과 대통령에 집중된다면 일종의 제도적 실패다. 분권적 접근과 분권적 사고가 해결책이다.

▶대선후보들이 정치권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개혁을 논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거나 특권을 내놓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정치개혁의 핵심은 초 집중된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해야 하는데 있다.

▷이국운=국회의원 수를 줄이면 소수의 국회의원이 중앙권력을 농단하는 독과점의 폐해가 불거질 것이다. 오히려 중앙정부와 국회의 입법 권한 상당 부분을 광역자치의회로 넘기는 입법권한 자체의 분권화를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이 옳다. 중앙에서 필요한 법률은 국가법률로 입법하고 지역에서 필요한 법률은 자치법률로 입법하며, 양자가 헌법적 구조 속에서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찾도록 하면 된다.

▷안동규=정치개혁의 핵심은 소수가 가진 권력을 다수에게 이전시키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나 다른 부서로 분산시키고, 국회의원의 권한을 지방의원에게 이전해야 한다. 중앙언론의 권한과 힘도 지역언론으로 넘겨야 한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보다 권력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육분야에서 중앙정부가 수많은 지침으로 일선학교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기우=교육은 학생들의 창의성 계발에 도움이 돼야 한다. 이는 개개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교육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지역마다, 단위학교마다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육권한과 재정을 지방분권화해야 한다. 초'중등교육에 대해서는 정책결정권과 집행권을 지방에 완전히 이양해 주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이국운= 다양화된 후기산업사회에서 5천만 명짜리 정치공동체가 단일한 중심에서 결정되는 교육지침에 의하여 통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난센스에 가깝다. 교육과정, 교육내용, 교사양성 등의 기본 틀을 교육기본법으로 보장하는 범위에서 교육의 지방분권을 달성하는 것이 현실에 더 적합하다.

▶일자리 창출과 국민소득 증대를 위해 중앙집권 체제에서 지방의 역할을 확대하는 지방분권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안성호=지방자치의 나라 스위스 코뮌에서는 실업자가 생기면 동네주민이 나서서 일자리를 주선해 준다. 실업문제 해결에 정부보다 앞서 코뮌의 동네주민이 나서는 스위스의 실업률은 3% 미만이다. 이웃 나라들이 10%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로 허덕이는 것을 고려할 때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스위스의 빈곤율도 여느 선진국의 3분의 1 내지 절반밖에 안 된다. 동네주민이 입법자로서 세금을 포함한 주요 세입과 세출의 내역을 결정하도록 하는 직접민주제가 조세순응도 촉진한다. 이런 관점에서 읍'면'동을 적어도 준자치단위로 격상시키는 '동네 주민자치 선진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이국운=이 질문에 앞서 지금까지의 중앙집권 체제가 일자리 창출과 국민소득 증대에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최근 수년간 계속된 고용 없는 성장은 대기업 중심의 중앙집권적 경제체제가 국민의 실질적 후생을 증대시키는 데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지방분권은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경쟁하는 경제 주체들로 재구조화함으로써 특히 지역의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일자리 창출과 국민소득 증대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탈산업화, 지식정보화시대에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려면 지방분권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도 있다. 지방분권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비전으로 봐야 하느냐.

▷이기우=많은 정치인이 지방분권을 미래의 정치질서라고 보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도 '연방주의는 미래의 정치질서이다'라고 얘기한다. 소품종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던 산업사회는 중앙집권적인 엘리트주의가 효과적일 수 있었으나 다품종 소량생산과 개성을 중요시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는 존립의 기반을 상실했다. 미국이나 독일, 스위스와 같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고도의 지방분권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안성호=옳은 지적이다. 일찍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 교수는 "국가는 양날의 칼이다. 국가는 경제성장에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인위적 쇠퇴의 원인"이라고 갈파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20~30년 동안 범세계적으로 진행된 지방분권은 국가주권의 변동을 수반한 글로컬리즘(globalism)의 제도적 발현으로 간주할 수 있다. 차기정부의 강도 높은 지방분권 정책은 이런 문명사적 견지에서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정리'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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