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애란의 청춘발언대] '과거'로부터의 청춘

2012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2012년의 모든 일은 '과거'로 남게 되겠지요. '과거'란 말은, 누구에겐 열정적이고 치열했던 지난날을, 다른 누구에게는 어둡고 후회스러운 지난날을 떠올리게 할지 모릅니다. 저에게 '과거'라는 말은 많은 부분 후자에 해당이 되었습니다. 제 '과거'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고, 항상 소극적인 저 자신이 반복되는 날들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중학교 때 가을 소풍을 두류공원에 있는 놀이동산으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대구 시내에 있는 곳이라, 학생들이 알아서 버스를 타고 정해진 시간까지 놀이동산에 도착하면 되었죠. 대구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었던 저는 가기 전날 가는 버스를 알아보고 나름대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만 버스를 잘못 타고 말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뭔가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고, 허겁지겁 내리니 엉뚱한 곳이었습니다. 한참을 돌고 돌아 놀이동산에 도착해보니 이미 약속 시간보다 서너 시간이 늦은 후였죠. 전교생 중에서 놀이동산에 그렇게 늦게 도착한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억울(?)했던지, 반 친구들을 만나고는 심지어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 일은 저에게 아직도 상처 아닌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어쩌다 두류공원을 지나갈 때면 그때 기억에 가슴이 저립니다. 그리고 이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잘 모르는 곳으로 쉽게 나서질 못합니다. 나서더라도, 매번 길을 재차 확인해야 하죠. 이런 작은 기억 하나하나가 저에겐 부끄러운 '과거'를 만들었습니다. 학창시절 저는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비중을 두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나는 매일 조금씩 지워 나가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기를 원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다짐들이 불편해졌습니다. '과거의 나를 버린다면,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내가 온전히 과거를 지울 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사실, '과거의 나'는 매번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할 때 만난 책이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재선에 성공한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오바마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입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오바마에게 백인의 가정에서, 백인 학교에 다니는 것은 큰 혼란과 상처를 주었죠. 어릴 적 떠나버린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반쪽 뿌리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찾아서 가는 것, 아니 자신의 반쪽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내용이었죠.

자신의 삶을 대하는 오바마의 태도는 제 고민의 답을 주었습니다. 오바마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죠. 비록 그것이 부끄럽고, 때로는 지우고 싶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진짜 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는 자신의 배경에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되물었고 그것을 자기 삶의 이유와 자산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바마의 연설이 감동적이고 유명해진 이유는 아마도 그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모든 것을 시작하는 그 바탕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와 미국 사회의 역사를 얽으면서 희망을 말하는 연설. 그것은 정말 세련되게 소명 의식과 시대정신을 말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청춘. 흔히 청춘은 '미래'와 '꿈'이란 단어와 함께 많이 거론됩니다. 하지만 방황하는 청춘일수록 과거라는 단어와 더 많이 엮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 저도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정답은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서, 꿈속의 보물은 결국 자신이 꿈을 꾸었던 그 교회 아래에 있었던 것처럼요.

답답한 고민으로 시름하고 있을 친구 청춘들에게 한 가지 전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제 친한 친구의 좌우명인데,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말입니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각자 인생의 향취가 다르듯, 모두의 꿈도 다 다를 겁니다. 누가 정해준 꿈보다, 자신의 삶에서 캐어낸 꿈을 모두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우리 존재 파이팅!

대구경북 대학생문화잡지 '모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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