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청각장애 아내 심민경 씨와 지체장애 남편 조창현씨

"우리의 고통, 태어날 아기에 대물림 되진 않겠죠"

조창현(가명
조창현(가명'57) 씨가 아내 심민경(가명'34'여) 씨를 자리에 누이고 있다. 임신 4개월인 아내 심 씨는 지난해 여름에 당한 끔찍한 일 때문에 온종일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4일 오후 천식 때문에 병원에 갔다 돌아온 조창현(가명'57) 씨가 자신이 사는 원룸 문에 채워진 자물쇠를 열고 다시 문의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 문을 열었다. 집 안에는 아내 심민경(가명'34) 씨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조 씨가 이렇게 이중장치를 한 이유는 아내의 안전 때문이다.

조 씨는 "지금 아내가 임신 중인데다 정신도 온전하지 못하고 소리도 잘 듣지 못하는 상태"라며 "자칫 위험한 일을 당할까 봐 겨우 생각해 낸 방법이 문에 자물쇠를 달아놓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조 씨가 이처럼 아내의 안전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이유는 지난해 여름 아내가 당한 끔찍한 일 때문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아내가 지난여름에 보청기를 잃어버렸어요. 다시 사야 하는데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아내가 동네 근처에서 몹쓸 일을 당했습니다. 청각장애라 말도 못해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범인은 아직 못 잡았습니다."

아내 심 씨는 이때부터 정신이상 증세까지 생겨 밤마다 몸을 심하게 떨면서 소리를 지른다. 병원에서는 당장에라도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임신 중이어서 약을 먹을 수도 없는데다 입원비를 마련할 형편도 안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아픈 남편과 안 들리는 아내

조 씨가 아내 심 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6월 대구역에서였다. 경산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대구역에 도착한 조 씨는 보따리를 안고 대합실에 앉아 있는 심 씨를 보았다. 조 씨가 처음 본 심 씨의 모습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으면서 온몸에 멍투성이인 상태였다.

"첫 모습이 매우 처참하고 불쌍했어요. 그때는 보청기가 있을 때라 내가 조금 크게 말하면 알아들었어요. 어머니와 새 아버지의 폭행과 학대를 못 견디고 부산에서 뛰쳐나왔다고 하더군요.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여자 같아서 일단 제 집으로 데려왔어요."

조 씨가 심 씨를 계속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심 씨의 어머니와 새 아버지가 심 씨를 찾아왔을 때였다. 심 씨의 어머니와 새 아버지가 심 씨를 데려가기 위해 달래고 윽박질렀지만 심 씨는 가려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조 씨는 "심 씨를 아내로 맞아 내가 지켜주겠다"고 말했고, 심 씨의 어머니는 "지지든지 볶든지 알아서 하라"며 심 씨의 보청기 한쪽을 빼앗았다.

심 씨를 지켜주겠다고 장담하긴 했지만 조 씨 또한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다. 조 씨의 오른손은 손가락이 접혀진 채 그대로 굳어 있다. 조 씨가 젊었을 때 가방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손이 끼이면서 다친 뒤 몇 십 년째 손가락이 접혀진 상태로 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조 씨는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조 씨가 아픈 곳은 손가락뿐만이 아니다. 척추 협착과 오른쪽 무릎 관절염 때문에 조 씨는 걸을 때마다 절뚝거린다. 몇 달 전부터는 목에 혹이 만져졌다. 병원에서는 '목의 림프절에 생긴 혹인데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려면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비용 때문에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속고만 살아온 지난 세월

조 씨는 어렸을 때는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청도에서 태어나 어릴 때 대구 남문시장 근처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조 씨가 자라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살아남기 위해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아무리 일을 해도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막노동도 해 보고 아는 형님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외판원도 해 봤지만 돈을 모으지 못했어요. 돈이 모일 만하면 사기를 당하거나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뒤 다 날려 먹기 일쑤였거든요."

조 씨가 더욱 힘들어진 건 몇 년 전부터 연속으로 당한 사기사건 때문이다. 몇 해 전, '상조회사에 가입해서 한 달에 3만원씩 넣으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는 지인의 말에 조 씨는 어려운 살림에 저축한다는 생각으로 3만원씩 회비를 냈다. 그러던 중 이 회사가 특약 가입을 권하면서 돈을 더 내라고 조 씨를 꾀었다. 그렇게 특약으로 세 차례에 걸쳐 낸 돈이 약 100만원이었다. 그러나 이 상조회사는 회원들의 가입비를 챙겨 달아나버렸고 조 씨는 결국 그 돈을 떼였다.

얼마 전에는 조 씨 모르게 휴대전화가 15통이나 개통돼 사용 요금 500만원이 몽땅 조 씨에게 청구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몇 달 전 잃어버린 장애인등록증을 누군가가 주워 조 씨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것이다. 다행히 휴대전화가 개통된 통신사의 본사와 협의해 요금폭탄을 피하기는 했지만 아직 조 씨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 5대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국선변호인을 통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조 씨는 "돈이 없어 지금 갖고 있는 휴대전화도 사용 중지된 상태인데 남이 쓴 휴대전화 요금을 낼 생각을 하니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아기도 곧 태어나는데…

조 씨 부부는 올 6월이면 부모가 된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없는 환경이라 걱정이 크다. 사실, 지난해 11월 이사 온 지금의 집도 속아서 들어왔다. 예전에 살던 곳보다 월세가 훨씬 싸고 환경도 좋다는 말에 이사 왔지만 실상은 습기 때문에 벽지에 곰팡이가 피고 들떠 있었으며 수도와 보일러는 고장 나고 터져 물이 새기 일쑤다. 조 씨는 "이런 집에서 어떻게 아기를 키울 수 있겠는가"라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초생활수급비 78만원 이외에 다른 수입이 없는 조 씨 부부는 이번 겨울이 너무 혹독하다. 특히 고장 난 보일러 때문에 겨우내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임신 중인 심 씨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사주지 못하는 때가 많아 조 씨는 가슴이 아프다.

"이번 겨울이 너무 추웠잖아요. 한번은 너무 추워 아내와 같이 옷을 여러 겹 껴입고 동대구역으로 가서 노숙했던 적도 있어요. 차라리 역사 안이 집보다 따뜻하더군요. 어떤 때는 먹을 것이 떨어져서 무료급식소를 들러 아내 먹을 것까지 싸온 적도 있어요. 입덧도 심해 몸이 많이 축났을 텐데 해 줄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조 씨 부부는 6월에 태어날 새로운 식구와 함께 새 삶을 살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에 절망감만 쌓인다. 조 씨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하나같이 걱정거리뿐"이라며 "지금 상태라면 앞으로 태어날 아기도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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