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 화백은 점심 때 밥 먹기가 뭐하면 가는 곳이 따로 있다. 대구 중구 남산동 '도루묵' 막걸리집이다. 막걸리를 주문하면 놋그릇 잔에 한가득 부은 막걸리와 도루묵 등 기본 안주가 나온다. 이 화백은 두 손으로 잔을 감싸고 마신다. 잔을 비우고 나면 젓가락으로 놋그릇 잔을 친다. '땡' 하고 울리면 주모가 한 잔 더 가져온다.
"큰 잔으로 막걸리를 쭉 들이켜면 기분도 좋고, 옛날 술 배우던 것도 생각나고… 두 손으로 마시는 건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뭐 상대편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요."
시어머니에 이어 막걸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희숙 씨는 "지금도 다른 막걸리잔에 비해 크지만 옛날에는 '왕대폿잔'으로 불릴 만큼 더 컸어요. 여기 오시는 분은 그 대폿잔을 못 잊고 오는 단골들이에요."
◆대포(大匏), 그리고 왕대포(王大匏)
막걸리는 보통 큰 술잔에 마신다. 그래서 대폿술이다. 대포(大匏)는 '큰 바가지'라는 뜻이다. "대포 한잔 어때?"라고 묻는 것은 '막걸리 한잔하자'는 말이다. 옛날 선술집엔 '왕대포'라고 쓰인 깃발이 무수히 펄럭였다.
요즘 대폿집들은 대부분 옹기나 사발을 잔으로 쓰지 않는다. 쉽게 잘 깨지고 이가 잘 빠지기 때문이다.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사기 잔을 쓴다. 오래 쓰면 색이 바래 술 맛이 떨어진다. 아예 와인잔에 먹걸리를 마시는 젊은이도 있고, 사기 소주잔에 막걸리를 홀짝이는 여성들도 있다.
◆막걸리 전용 잔
술 맛을 최종 완성하는 건 술잔이다. 술은 궁합이 맞는 잔에 마셔야 특유의 풍미가 온전히 살아난다. 음식점에서 맥주를 시키면 크기나 모양이 거의 똑같은 이른바 표준 잔이 나온다. 소주 역시 표준 잔으로 불리는 작은 소주잔이 나온다. 그러나 막걸리잔은 음식점마다 들쭉날쭉이다. 한 번에 마시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국 사발 정도 잔에서부터 약주잔보다는 조금 큰 잔 등 다양하다. 심지어 맥주잔을 그대로 내오는 식당도 많다.
막걸리는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막걸리의 다섯 가지 맛을 한 번에 보려면 아무래도 잔이 좀 넓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크기는 밥공기와 국그릇의 중간 정도가 알맞다고 말한다. 요즘 유리잔과 손잡이가 달린 사기잔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도자기 업체는 물이 흐르는 듯한 단아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막걸리 전용 잔을 내놨다. 한 손에 쏙 잡히는 아담한 크기의 잔이 6개 1세트로 구성돼 있다. 또 다른 업체는 예전의 투박한 사발에 담아 먹던 정겨운 정서를 담아내면서도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이 들어간 막걸리잔을 출시했으며, 또 한 업체는 손잡이가 없어 불편했던 점을 감안해 공기모양의 잔에 곡선 모양의 손잡이를 붙인 잔을 내놨다.
◇청량감 강한 막걸리…맛은 술잔에서?
막걸리잔을 둘러싼 애주가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막걸리는 후루룩 단숨에 들이켜며 막사발로 마셔야 제맛이라는 쪽과 새로운 막걸리 음주문화를 창조해야 한다며 다양한 잔을 시도하는 쪽이다.
술 연구소 쪽은 "막걸리의 특성은 도수가 낮고 청량감이 강하다는 것"이라며 "시원함을 보전하는 재질에 한 번에 들이켜기에 알맞은 크기로 제작하는 게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발 정도의 크기면 한 번에 들이켜기에 부담도 없으며, 재질의 경우 양푼은 너무 쉽게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져 시원함이 유지되기 어렵고 플라스틱 또한 시원함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도자기가 낫다"고 했다.
술 제조 회사 쪽은 "막걸리는 소주나 와인과 달리 벌컥벌컥 마셔야 맛있기 때문에 일반 술보단 상대적으로 용기가 커야 하고 단맛'신맛 등 맛을 한 번에 느낄 수 있게 잔의 표면이 넓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기는 밥공기와 국그릇 중간 정도이면 되고, 단 걸쭉하고 도수가 높은 고급 막걸리는 용량이 작은 자기를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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