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생활과 정서는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현대인에게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겉은 사교적이지만 속은 불안과 고립감으로 꽉 차 있다는 것. 세상이 점점 개인주의와 경쟁주의로 물들고 있는 까닭이다. 결국 외로움은 평생의 짐이 됐다. 현대인의 대처법은 이렇다. 극복하거나 혹은 즐기거나.
◆외로운 사회, 쓸쓸한 미래
현대인이 외로운 이유는 점점 혼자 살기 때문이다. 1인 가구 시대가 되고 있는 것.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지난해 기준으로 453만9천 가구다. 전체 가구의 25.3%다. 통계청의 '2010~2035 장래가구 추계' 자료에 따르면 2035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4.3%를 차지하며 가장 흔한 가구 유형이 될 전망이다.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축소된 것이 지난 세기의 일인데 이마저도 해체되고 있는 것.
외로움의 문제는 벌써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인들의 '고독사'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홀몸노인은 120만 명 정도로 전체 노인 인구의 20% 수준이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며 홀몸노인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그러면서 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들이 뒤늦게 발견되는 뉴스도 잇따르고 있다.
좀 더 심각한 문제는 '노인 자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65세 이상) 자살률은 10만 명당 80.3명 수준으로 OECD 25개국 중 1위다. 특히 인적교류'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홀몸노인들이 고립감'소외감을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분석이다.
노인들만의 얘기일까? 지금의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이들에게도 곧 들이닥칠 '외로운 사회'의 그늘이다.
◆대화가 필요해
외로운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종목으로 '대화'가 있다. 집에 오면 아내와 "아는?" "밥 도!" "자자." 이렇게 단 세 마디로만 대화를 나눈다는 경상도 남자는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 요즘 부쩍 늘어난 혼자 사는 현대인들은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기 힘들다. 혼자 영화 보고, 쇼핑하고, 여행을 떠날 수는 있어도 대화는 도저히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종목이다. '자문자답'을 할 수도 없는 일.
혼자 컸고, 또 혼자 살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대화의 결핍을 채우려 발버둥이다. 8년째 홀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한모(28'대구 북구 복현동) 씨의 일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침이면 한 씨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어주는 이들이 있다. 걸그룹 '소녀시대'다. 멤버 9명이 돌아가며 '모닝콜' 코멘트를 날린다. 실은 최근 다운로드한 스마트폰 알람 애플리케이션이다. 온라인에 접속하면 귀엽고 앙증맞은 코멘트의 알람을 다양하게 다운로드할 수 있다.
한 씨는 '밥터디' 회원이다. 밥터디란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는 이들끼리 모여 한 끼 식사를 함께하는 모임으로 대학가에서 생겨났다. 주로 같은 분야의 취업 공부를 하는 사람들끼리 밥을 먹으며 정보도 교환한다. 그는 '출첵스터디'에도 가입해 있다. 주로 이른 아침 시간에 도서관 등 지정 장소에 모이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 늦잠과 게으름을 막으려 결성한 모임이다. 한 씨의 모임은 저녁이면 종종 '술터디'로도 이어진다. 이왕 알게 된 사람들끼리 수험 생활의 고달픔을 술로 위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모임은 실은 대화의 결핍은 물론 관계의 결핍을 채우는 수단이란다. 한 씨는 "혼자 생활하며 하루 종일 공부만 하면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난 등 사회가 젊은이들을 외롭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SNS, 외로움 해소 도구일까?
외로움을 달래는 도구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떠오르고 있다. 역시 '관계 맺기'가 핵심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2천5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면서 적어도 그와 비슷한 규모의 '네트워크'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접속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지난해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페네 디터스 교수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인기 SNS인 '페이스북'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한 후 외로움 수준을 분석했고, 'SNS가 외로움을 달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SNS를 통한 수다가 실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유대감 형성에 효과가 있다는 분석. 대학생 김지영(24'여) 씨는 "오프라인에서 맺은 관계를 SNS로 확장해 다지는 생활양식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익숙하다. 오프라인에서 하기 어려운 말을 온라인에서는 쉽게 하는 등 서로 보완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해소할 수 없는 외로움의 한계는 분명 있다. 한계를 극복하려는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사회현상으로까지 나타났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진 '솔로대첩'이 대표적인 사례다. '외로운 솔로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미팅'이라며 온라인상에 제안된 게시글에 수만 명의 네티즌이 참가의사를 밝혔고, 서울과 대구 등 국내 15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행사에 전국 경찰 1천여 명이 투입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기대됐다. 하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참가 인원과 남녀 참가자의 성비 불균형 등 '외로움 해소 대작전'은 실패로 끝이 났다. 핑크빛 희망은 온라인까지였다.
◆극복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렇듯 외로움을 극복하기란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비집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때도 있지만 상처도 얻기 일쑤다. 그러자 외로움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또 즐기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관련 시장의 성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려동물 관련 시장이 대표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5조원 규모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1천만 명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4가구 중 1가구다. 1인 가구는 물론 인생에서 결혼을 생략하거나 취소하는 싱글족과 증가세를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반려동물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소중한 파트너로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일본 영화 '고양이를 빌려 드립니다'는 주인공이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를 외로운 사람들에게 빌려주면, 사람들이 고양이를 통해 일상 속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한 시장조사전문회사가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에게 반려동물 양육 후 나타난 가장 긍정적인 변화를 물었더니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 같다'(66.5%)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웃을 일이 많아졌다'(47.5%), '외로움을 달래준다'(34.4%)는 중복 대답도 이어졌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구호로 삼는 1인 여행객도 증가 추세다. 한 온라인 여행사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해외여행 예약 현황을 분석했더니 1인 여행객이 32.7%를 차지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70.9%로 압도적이었고, 연령대별로는 30대가 48.7%로 가장 많았다. 여행업계는 "최근 1인 가구의 증가로 다른 가족 구성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특히 여성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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