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골리앗과 맞장 대구의 빵집] 승승장구 사례 '최가네 케익'

주문형 제품으로 차별화, 고객이 스스로 찾아와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대구 빵집'이 있다. 대구 빵의 맥을 잇고 있는 '최가네 케익'이다.

1940년대 말 대구의 대표적인 3대 제과점의 하나였던 '삼미제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최가네 케익' 최무갑(72) 사장은 "대형 브랜드 빵과 맞붙어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앞선 기술력과 한 번 붙어보자는 배짱과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가네 케익'은 동성로 옛 아카데미극장 옆 골목에 있다. 5층 건물이다. 1층은 매장, 2층은 카페 겸 휴게실, 3층부터 5층은 작업장이다.

지하실은 고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1층 매장에 들어서면 하트 모양 딸기 무스 케이크, 사과 모양 생크림 케이크, 토끼 얼굴 모양의 조각 케이크 등 다양한 케이크가 전시돼 있다.

최 사장 부부와 케이크 기술자인 두 아들, 매장 관리를 담당하는 딸 등 가족이 대구 토종 빵집의 명성을 지키고 있다.

'최가네 케익'의 창업 과정은 이렇다. 최 사장의 아버지는 대구 초창기 빵집의 3인방이었던 '삼미제과' 창업주 최팔용 사장이다. 경주가 고향인 최 사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빵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제빵 기술을 익혔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대구로 내려오고 나서 육군병원에 빵을 납품했다. 당시 친구인 '수형당'의 진병수 사장과 군납 경쟁을 펼치다가 진 사장의 사업 수완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고향인 경주로 내려가 '최가 빵'을 만들었다.

최무갑 사장은 고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학교를 포기하고 전국을 떠돌며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유명 제과점을 찾아가 기술을 배웠다.

군에서 제대한 후 '뉴델제과점'(최종수 대표)에 취업한 후 결혼도 했다. 10여 년간 총기술자로 근무한 후 마침내 1976년 동성로 한일극장 옆에 '킹뉴델제과점'을 차려 독립했다. 하지만 기술자로서는 탁월한 솜씨를 인정받았지만 경영 능력은 없었다. '로마제과' 경영도 했지만 결국 부도를 내는 등 고배를 마신다.

고향인 경주로 내려가 호텔 제과점에 취직했다. 15년 동안 호텔 제과점에서 근무하면서 경영을 배워 18년 만에 다시 대구로 입성한다. 동성로에 약 43㎡(13평) 규모의 작은 케이크 전문점 '최가네 케익'을 열었다.

주변에는 이미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태였다. 주변에서는 '3개월을 못 버틸 것'이라고 했다.

최 사장은 "다른 업체와 차별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기 손바닥만 한 조각 케이크 3개를 1천원에 팔았다. 값이 싸고 작은 케이크는 손님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조각 케이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손님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최 사장은 "그때는 사업에 재미를 들여 미친듯이 일했다"고 밝힌다.

2003년 바로 옆 건물을 사들였다. 인근에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계속 들어섰지만, '최가네 케익'은 승승장구했다. 그 배경에는 최 사장의 특별한 비법이 있다. 바로 '손님 주문형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최 사장은 "손님이 딸기를 원하면 딸기를, 블루베리를 원하면 블루베리를 넣어준다"며 "케이크 모양도 손님이 그려달라는 대로 그려준다"고 한다.

직원들에게는 '고객에게 무조건 봉사하라'고 당부한다. 맛으로 봉사하고, 늘 청결함을 유지해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매장 인테리어의 차별화를 위해 진열 상자는 2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등 고객위주의 경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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