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담도암에 걸린 김복용 씨

암 걸린 아버지와 입대 앞둔 외동아들 '무거운 동행'

김복용(53
김복용(53'대구 달서구 월성동) 씨가 아들 세명(21) 씨의 부축을 받으며 병실 복도를 걷고 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김 씨는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미안하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담도암 3기인 김복용(53'대구 달서구 월성동) 씨는 아들 세명(21) 씨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만 든다. 다른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더라면 자신의 꿈도 펼치고 행복했을 텐데 꽃 같은 청춘을 몸져누운 부모의 병수발만 들다가 끝내는 것 같아서다. 김 씨는 "아들에게 좋은 모습,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며 "아들이 나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좀 더 열심히 살 걸 하고 후회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놈의 술

김 씨는 평생 중화요리 식당 주방장으로 일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운 유일한 기술이다. 그렇게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꿈도 가졌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중화요리 식당을 차려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술 때문이었다. 식당 일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중화요리의 느끼함을 달래려 별생각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결국 화근이 됐다. 처음에는 소주 몇 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매일 소주 2, 3병씩 마셔야 버틸 수 있게 된 것.

"매일 술에 취해 살았어요. 스트레스를 푼다고 마신 술이 이렇게 화가 돼서 돌아온 겁니다. 내가 술에 취해 있는 동안 아내와 아들은 너무 힘들어했다더군요. 그것도 모른 채 술만 마셨으니…. 암 판정을 받았을 때 그제야 '가족을 돌보지 못한 벌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씨가 술에 취해 있는 동안 집안은 점점 어려워졌다. 알코올 중독 증상까지 보이면서 식당 일자리를 점점 구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2년 전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 전문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담도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지난 2월 초에야 알았다.

◆미안하다. 아들아

김 씨의 마음속 가장 미안한 존재는 아내와 아들이다. 아내는 매일 술에 취해 있는 자신 때문에 결국 정신병을 얻었고 아들은 학업을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7년 전 아내가 자신과 심하게 다툰 뒤부터 갑자기 이상한 증상을 보였다고 기억했다. 아내는 자꾸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러 온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했고 자신의 말만 계속 반복했다. 김 씨는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아내가 "의사들이 자신을 해칠 것"이라며 두려움에 떠는 탓에 이마저도 하지 못했다.

2년 전부터는 아내의 오른쪽 팔에 혹이 생기기 시작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내는 완강하게 병원행을 거부했다. 그러나 정신 이상 증세에 혹까지 생기면서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지난달 말 억지로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시켰다.

김 씨의 아들 세명 씨는 2년제 전문대학을 다니다가 자퇴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아파 병수발을 해야 하는데다 가족 중에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혼자뿐이었기 때문이다. 또 학비가 저렴한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 학비조차 댈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가계 형편도 한몫했다.

"세명이가 나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못 마쳤어요. 중학교 3학년 때도 '집에 돈이 없으니 공부하는 것보다 돈을 벌어야겠다'며 학교를 그만둬 버리더군요. 말려 봤지만 소용없었어요. '다른 부모들이 신경 써 주는 만큼만이라도 해 줬어도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세명이를 보면 항상 미안합니다."

김 씨는 아들이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밤에는 공부해 검정고시를 통과했다는 사실도 알고, 전문대학에 입학해 제대로 취업하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아들이 자신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고 병수발을 들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 막막한 앞날

김 씨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김 씨는 담도암 판정을 받은 뒤 겨우 막힌 담관을 뚫어 놓는 시술만 받은 상태다. 종양 제거 수술을 해야 하지만 혈소판 수치가 일반인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아 수술을 하면 피가 멎지 않기 때문에 수술도 못하고 있다. 아내의 병도 문제다. 병원에서는 아내의 오른쪽 팔에 난 혹이 종양으로 의심된다고 말했지만 이는 더 정확한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검사비조차 없어 얼마나 심각한지 확인도 못 한 채 손을 놓고 있다.

김 씨 가족의 한 달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지원금 50만원이 전부다. 김 씨의 병이 심해지기 전엔 아들 세명 씨가 막노동이나 아르바이트로 벌어오는 수입 100만원 안팎을 보태 근근이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 어머니 병간호에 발이 묶여 일을 나가지 못하는 상태다. 지금까지 모아둔 돈은 김 씨의 알코올 중독 치료비로 거의 다 사용됐다. 병원비도 밀리고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료도 연체됐지만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김 씨 가족에게 닥친 또 하나 고민은 아들 세명 씨의 군대 문제다. 세명 씨는 지난해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가계 곤란은 면제 사유지만 당시엔 어머니가 병원에 가기 전이어서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돼 버렸다. 이 때문에 외동아들인 세명 씨가 입대를 하고 나면 생계는커녕 부모님을 돌볼 사람이 없다. 친가와 외가와의 연락도 모두 끊겼다.

김 씨는 이토록 후회스러운 삶을 산 자신이 원망스럽지만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잘 살았다면 가족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 텐데…" 김 씨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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